되풀이되는 대출금리 인하 압박
금리도 시장 가격…인위적 개입 피해는 차주 몫
"대출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입니다. 금융당국이 개별 은행 금리를 건건이 들여다보며 이래라 저래라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9년 전 금융감독원을 처음 취재할 때 은행감독국장에게 들었던 말이다. 인사차 찾아간 기자를 앉혀놓고 그는 은행의 금리 산정 체계에 대해 설명했다. 자금조달 비용에 신용위험과 업무원가, 목표이익률 등이 반영되는 구조부터 감독당국의 개입이 허용되는 범위까지 일일이 짚었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의의 결론은 간단했다. 은행이 비용이나 부도 위험 등을 자의적으로 부풀렸다면 감독으로 바로잡아야 하지만, 정당하게 산정된 금리까지 낮추라고 강요할 순 없다는 얘기였다.
당시는 정치권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금감원이 2017년 말 신한은행의 가산금리 인상에 제동을 건 직후였다. 금융 지식이 전무했던 기자로선 금리 체계 같은 기초적인 문제로 바쁜 금감원 간부의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했다. 한편으론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부와 정치권의 금리 인하 요구에 담당 국장도 무척이나 답답했나보다 싶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건 지난달 말 금감원 국정감사 때문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축소해 가산금리 인하 효과를 상쇄했다고 질타했다. 지난 7월 은행법 개정안 시행으로 가산금리 산정에서 일부 법정비용이 제외됐는데도 대출금리가 오르자 은행권이 '꼼수'를 썼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금리도 시장 가격인데 법 하나 바꿨다고 자동으로 내려갈 만큼 단순하진 않다.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으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초 4.1%에서 현재 5% 가까이 뛰면서 은행의 조달비용은 물론 신용위험에도 상승 압력이 커졌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까지 겹쳐 은행은 금리를 높여 대출 수요를 조절하고 있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정교하게 조정하기보다 우대금리 축소로 국회 지적을 자초한 측면은 있지만, 금리 상승 요인이 적지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 이런 구조를 몰랐다면 문제고, 알고도 모른 체 했다면 더 문제다. 금리 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결론이 난 건 다행이지만, 의원들도 은행 비판에 앞서 글로벌 거시경제 흐름과 국내 규제 환경부터 살폈으면 한다.
은행 금리를 두고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해묵은 장면이 반복되는 배경엔 은행 산업에 대한 일부 정치권의 낡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은행업이 인허가 산업이고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은행을 '땅 짚고 헤엄치기' 하는 이자장사꾼 정도로 보고, 필요할 때마다 금리를 통제할 수 있는 공공재처럼 취급하는 건 다른 얘기다.
그 사이 국내 은행들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들은 비은행과 해외 사업을 확장했고,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 등 금융의 경계를 허무는 변화에도 대비하고 있다. 잇따른 금융권 해킹 사태가 보여주듯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에 요구되는 수준도 높아졌다. 외형만 커진 게 아니라 사업 구조와 감당해야 할 위험이 훨씬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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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누르면 부작용이 뒤따른다. 은행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여신 심사를 강화하면 일부 차주는 저축은행으로, 다시 대부업으로 밀려날 수 있다. 10년 새 은행도, 은행을 둘러싼 환경도 달라진 만큼 정치권의 인식 또한 바뀌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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