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60채 소실…SH, 명도소송 취하 검토
주민들, 소취하 별개로 추가 법적 대응 예고
우선분양권 갈등…3739가구 공급 차질 우려

2일 화재로 검게 탄 주택 잔해만 남은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일대 뒤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문제원 기자

2일 화재로 검게 탄 주택 잔해만 남은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일대 뒤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문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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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화재 이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와 주민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SH는 화재로 소실된 주택에 대해 명도소송 취하와 후속 절차를 검토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추가 보상 대책이 빠진 착공을 막기 위해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착공 일정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2일 찾은 구룡마을 일대는 화재가 진화된 지 엿새가 지났지만 여전히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불길이 휩쓸고 간 구룡마을 2지구에는 검게 탄 건축물 잔해만 남아 있었다. 터전을 잃고 화재민대피소에 모여 있던 주민들의 분노는 재개발을 추진 중인 SH로 향했다. 2지구에서 28년째 살았다는 한 주민은 "출입이 제한되고 전기도 끊긴 곳에서 그냥 불이 날 리 없다"며 "재개발과 관련된 방화로 의심한다"고 말했다.

구룡마을은 2012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주민과의 갈등으로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총 1107가구 중 약 140가구가 이주를 거부한 채 이곳에 남아 있고 SH는 지난 3월 이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SH는 당초 9월쯤 법원 판결이 나오면 강제집행과 주민 이주 절차를 거쳐 내년 초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명도소송 결과가 늦어지면서 착공 일정이 하반기로 늦춰졌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발생한 화재로 일부 주택이 소실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구룡마을 토지주민협의회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2·3지구에 있던 주택 약 60채가 소실됐다. SH 관계자는 "화재로 소실된 세대는 (명도소송) 취하 여부를 소송 대리 법무법인과 검토 중"이라고 했다. 건축물이 멸실되면서 명도소송을 유지할 실익이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주민들은 화재로 재개발 일정이 빨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주민은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던 주택이 다 타버려서 흔적만 남아 있다"며 "법원에서 제대로 다투지도 못하고 억울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불이 난 2지구에만 31채 정도 있었고 주민들도 살고 있었다"며 "이주 보상을 다투려면 (주택) 자재 등 물건 평가를 해야 하는데 다 타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화재로 소실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택. 사진=문제원 기자

화재로 소실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택. 사진=문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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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는 소실되지 않은 주택에 대해서도 명도소송 승소 판결이 나오면 강제집행에 나설 예정이다. 다만 주민들은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SH의 강제집행 시도에 맞선다는 방침이다. 이강일 구룡마을 토지주민협의회 회장은 "SH가 강제집행을 시도하면 법원에 강제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SH의 이주대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행정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라며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강제집행을 유보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SH와 주민들이 대립하는 핵심 쟁점은 임대주택 우선분양권 부여 여부다. SH는 가구당 최소 수백만원의 이주보상금과 보증금 없이 월세 8만~21만원대에 머물 수 있는 임시이주주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은 임대주택에 5~10년간 살다가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SH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추가 보상을 제공하면 잘못된 선례를 남길 뿐 아니라 형평성 문제도 야기할 수 있어서다. 특히 구룡마을 재개발로 들어설 주택의 우선분양권을 제공할 경우 과도한 보상 논란이 일 수도 있다. 구룡마을과 차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전용 59㎡ 기준 최근 실거래가가 28억~29억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주택을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에 살다가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분양받을 돈이 없는 주민은 이를 팔아서 이주비로 쓸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곳(구룡마을) 우선분양권이 과하다면 SH가 보유한 다른 지역의 주택도 논의할 수 있다"며 "SH는 아무 협의도 없이 무작정 나가라고만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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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구룡마을 재개발을 둘러싼 법적 갈등이 장기화하면 사업이 수년간 지연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 경우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 등 3739가구의 주택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만약 법원이 주민들의 강제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이면 집행이 중단되고 항소심에서 다투게 된다"며 "판결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통상 1~2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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