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지난 사건 공개해도 돼
강한 국가는 과거 숨기지 않아
정부의 기록, 국민에 돌아와야
1974년 8월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 화제다. 영화는 정부 발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문점들을 짚어낸다. 그중 하나는 총성이 울린 횟수와 실제 공개된 탄환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의 배후 역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의 목적은 사건의 진실 규명에 있지 않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관련 기록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현실을 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비밀은 언제까지 비밀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오랜 분단과 대치 속에서 '비밀주의'는 국가 존립을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권력이 비밀의 장막 뒤에 숨을 때 음모론은 정보의 부족을 자양분 삼아 자라난다. 이는 외부 감시가 어려운 군이나 수사기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은 군 조직이 진실보다 조직의 명예를 우선시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영화 '어 퓨 굿 맨'과 '전쟁의 사상자들' 역시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진실이 어떻게 은폐되는지를 고발한 작품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허원근 일병 사망, 채수근 상병 순직 수사 외압 논란 등 폐쇄적인 조직이 진실보다 안위를 우선할 때 비극은 반복됐다. 진상규명 위원회들의 노력 역시 내부 자료 공개를 회피하는 기관들과의 마찰로 순탄치 않았다. 비공개에는 대체로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선례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미국은 1991년 케네디 암살 의혹을 다룬 영화 'JFK'가 사회적 논쟁을 부르자 이듬해 '케네디암살기록물법'을 제정했다. 안보에 치명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관련 기록을 이관해 25년 내에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영국 역시 정부가 생산한 기록은 원칙적으로 20년이 지나면 국립기록관으로 이관돼 공개 심사를 받는다. 비공개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 사유를 정부가 직접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진상규명을 국가에 맡기는 대신 기록을 공개해 국민 스스로 판단하게 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통일 직후 슈타지의 비밀문서를 전면 공개해 국가권력의 행사 과정을 검증하게 한 독일의 사례는 비밀 해제가 단순한 정보 공개를 넘어선 민주적 통제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비밀해제는 민주적 통제의 핵심이다. 조선시대 사관들은 국왕의 모든 언행을 사초에 기록했고 '조선왕조실록'으로 보존했다. 당시 사초는 국왕조차 열람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의 공개 원칙이나 비밀해제 절차에 관한 제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이제 우리도 비밀해제에 관해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국가안보 관련 자료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공개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록을 생산한 조직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에 이관해 공개 여부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유족의 기록열람권을 보장해야 한다. 비밀유지의 근거인 '국가의 중대한 이익'은 구체적인 위해를 막기 위한 경우에 한정돼야 하며 국가가 입증해야 한다. 나아가 현대사의 주요 사건의 경우 미국의 케네디암살기록물법과 같은 특별법 제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화 암살자(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우리 사회가 50여년 전의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경제력과 민주주의를 갖췄다. 반세기 전 사건의 기록이 공개되면 국가 안보가 흔들린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강한 국가는 과거를 숨기는 국가가 아니라 과거를 공개하고 설명할 수 있으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가다. 그러자면 국가가 생산한 기록은 언젠가 반드시 국민에게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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