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에 순직 사실 안 알리고 보상 거절
법원 "권리 행사 기대하기 어려워"
군 복무 중 숨진 가족이 뒤늦게 순직으로 인정됐는데도 군이 이를 알리지 않았다면, 유족이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할 수 있을까. 법원은 군이 순직 사실을 알리지 않아 보상금을 청구하지 못한 유족에게 소멸시효를 내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정은영)는 A씨가 국군재정관리단장을 상대로 낸 군인사망보상금 지급불가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보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인정된다"면서도 "군이 이를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 판시했다.
군 복무 중 사망…40년 뒤 순직 인정
A씨의 형은 1954년 9월 육군에 입대해 공병단 소속 병사로 복무하다 1956년 11월 24일 숨졌다. 당시 군이 작성한 화장보고서에는 사망 원인이 '병사'로 기재돼 있었고, 유품 인수자와 인수일자는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유족은 구체적인 사망 경위나 보상금 지급 절차에 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A씨도 1965년 무렵 어머니로부터 형이 군대에서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육군본부는 1996~1997년 형의 사망을 순직으로 재분류했다. 사망한 지 약 40년 만에 기존 결정을 바로잡았으나 유족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A씨가 형의 순직 사실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것은 그로부터 28년 이상 지난 지난해 5월 26일이었다.
A씨는 같은 해 11월 18일 국군재정관리단에 사망보상금을 청구했으나, 관리단은 5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12월 3일 지급을 거부했다. A씨는 순직 사실을 통보받은 날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돼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설령 시효가 완성됐더라도 군이 이를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는 주장도 폈다.
시효 완성 인정…지급 거부는 권리남용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1965년 무렵 형의 사망 사실을 들었고, 제적등본에도 사망 사실이 기록돼 있었던 만큼 늦어도 당시 유족이 보상금 지급 사유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군이 소멸시효를 내세워 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봤다. 유족이 형의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알지 못했고 보상 절차에 관한 안내도 받지 못해 청구권을 행사하기 사실상 어려웠다는 게 판단 이유였다.
재판부는 특히 육군본부가 순직으로 재분류하기 전에는 유족이 보상금을 청구했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순직으로 재분류한 뒤에도 군이 이를 유족에게 통지하지 않아 청구권을 행사할 기회가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고가 그 이상의 권리행사를 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순직 결정 사실을 알았다면 A씨가 보상금을 청구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망일 대신 통지일…유족 보호 취지
재판부는 군인사망급여금 제도의 개정 취지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1951년 제정된 군인사망급여금규정은 사망급여금의 청구 기간을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5년으로 정했다. 이후 1955년 개정된 규정은 청구 기간의 시작점을 '사망통지서를 받은 날'로 변경했다. 재판부는 "6·25전쟁 당시 유족이 국가의 공식 통보 없이 군인의 사망 여부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던 사정을 반영한 개정"이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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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군이 순직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거절한 처분이 군인의 직무 관련 손해에 대한 국가보상을 규정한 헌법과 군인사망보상금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권리자의 장기간 권리 불행사를 제재하고 법률관계를 안정시키려는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 이유에도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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