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골목길 끝없는 인파" 발묶인 시민들…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경찰 통제 앞 인파 뒤엉켜 진입 실랑이
이태원만 경찰 370여명 투입해 통제중
이태원·홍대 16만명…강남·성수 '한산'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저기 눈앞에 클럽이 보이잖아요. 제 짐이 다 저 안에 있다고요."
"상황을 보고 3~5분 간격으로 조금씩 열어 드립니다. 뒤로 물러서세요!"
핼러윈 당일인 31일 오후 10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관 5명이 철제 안전펜스를 펼쳐 골목 입구를 막아서자 곳곳에서 탄식과 고성이 터져 나왔다. 쿵쾅거리는 음악과 번쩍이는 조명이 뿜어져 나오는 골목을 불과 10m 앞두고 수백명이 좁은 진입로에 몰려 발이 묶였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가 핼러윈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골목 안쪽까지 인파가 빽빽하게 들어차면서 이동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박호수 기자
인파를 통제하는 경찰의 확성기 목소리가 울렸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반대편에서 오는 시민들이 뒤엉켰다. 좁은 진입로에 인파가 겹겹이 쌓이면서 어깨가 부딪치고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골목 진입이 차단되자 수십명이 한꺼번에 발길을 돌려 맞은편 이태원역 출구와 버스정류장 쪽으로 이동했다. 좁은 보도에 순식간에 인파가 몰리자 용산구청 직원들이 붉은색 경광봉을 흔들며 보행로를 정리했다.
"인도를 따라 계속 이동하세요. 멈추면 안 됩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클럽 음악이 뒤섞인 가운데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이 보도를 가득 메웠다. 넘어진 사람은 없었지만 일부 인파가 차도 가장자리까지 밀려 나오면서 거리는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웠다.
31일 오후 11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경찰이 핼러윈 인파의 골목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진입 통제 안내판이 설치된 가운데 경찰관들이 시민들의 이동을 유도하고 있다. 박호수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경찰은 이태원을 비롯해 전국 주요 번화가에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인파 관리에 나섰다. 이태원과 마포구 홍대, 성동구 성수동 등 전국 주요 다중밀집 위험지역 28곳에 경찰력 7800여명을 배치했다.
특히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골목에는 올해 처음 도입된 지능형 CCTV 6대가 가동됐다. 1㎡당 인파 밀집도를 초 단위로 분석해 위험 징후를 포착하는 방식이다. 관제 모니터에서 인파 쏠림이 감지되면 현장 경찰관들이 골목 입구에 대기시킨 펜스를 즉각 설치해 추가 유입을 차단했다.
대로변의 경계 태세도 삼엄했다. 이태원로에는 경찰 기동대 버스 3대가 차벽을 세웠고 전술 장갑차 1대와 폭발물 탐지견 2마리, 특공대 무장 인력이 배치돼 순찰을 벌였다. 이태원에 투입된 경찰력만 370여명에 달했다.
가짜 총기나 모의 흉기를 착용한 코스튬 참가자를 대상으로 소지품을 확인하는 불시 검문도 이어졌다. 경찰은 인파 밀집 관련 112 신고를 최단 시간 출동 단계인 '코드1' 이상으로 일괄 격상해 비상 대기했다.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골목 진입을 위해 길게 줄을 선 채 경찰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다. 대기 행렬은 골목 입구부터 지하철역 출입구 인근까지 이어졌다. 박호수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오후 6시부터 이태원119안전센터에서 녹사평 광장까지 이어지는 차로를 보행로로 개방하면서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이는 상황은 일부 해소됐다. 하지만 골목을 향한 인파의 발길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현장에서 인파를 통제하던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 한 경위는 "사전 계도를 그렇게 했는데도 인파가 끝없이 밀려들어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직장인 윤한정씨(34)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해 핼러윈이 익숙한 문화인데 오후 10시가 넘으니 골목 진입조차 안 돼 허탈하다"며 "오로지 이태원에 와야만 이 열기를 누릴 수 있으니 이렇게 다들 몰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프랑스인 관광객 키엘(28)씨는 "골목마다 차벽과 경찰이 촘촘해 이 많은 인파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안전해 보인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밤 11시가 넘어서자 인파는 참사 현장이었던 골목의 추모 공간 인근까지 들어찼다. 음악과 웃음소리가 거리를 뒤덮었지만 추모의 벽 앞에서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화려한 분장을 한 청년들도 국화꽃이 놓인 벽면 앞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역 일대 유동인구는 2만2000명~2만4000명으로 '붐빔' 단계를 나타냈다. 붐빔 단계는 4단계 밀집도 중 최고 수준을 뜻한다. 이태원 관광특구 전체 유동인구도 3만2000명~3만4000명에 달했다.
핼러윈 인파가 대거 몰린 11시47분께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용산구는 재난문자를 통해 "현재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주변 인파 혼잡으로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또한 이태원역으로의 진입 자제를 요청하고 인근 녹사평역 또는 한강진역을 이용할 것을 안내했다. 이태원역 입구마다 경찰들이 배치돼 이용 통제가 이뤄졌다.
한편 강남과 성수 등 다른 번화가는 핼러윈 특수 없이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강남역 일대 유동인구는 오후 8시 5만4000~5만6000명에서 오후 10시 4만8000~5만명으로 줄어 '여유' 단계를 나타냈다. 지자체와 경찰도 오후 9시께 강남 현장 합동상황실을 조기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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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카페거리 역시 평온한 주말 풍경이었다. 성수동의 한 식음료 매장 직원은 "주말인데도 매장이 평소보다 썰렁하다"며 "다들 축제 분위기를 즐기러 이태원이나 홍대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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