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규제시민포럼·비영리조직평가원, 국회 포럼
비영리·공익 법인 규제 체계의 전면 개편 촉구
"국가의 관리·통제 중심 시각 바뀌어야" 강조
비영리·공익법인이 우리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 서비스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현행 규제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경직돼 공익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소수의 탈법 행위를 막기 위해 설계된 규제들이 다수의 선의의 시민과 기업까지 제약하면서 공익활동 생태계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좋은규제시민포럼과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은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좋은 일을 어렵게 하는 규제사슬,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2026 비영리·공익법인 규제합리화 국회포럼'을 개최하고 비영리·공익법인 규제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촉구했다.
현재 국내 비영리법인은 민법상 2만6161개, 공익법인은 4058개에 이르지만 이를 총괄하는 정부 조직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법인 설립은 각 주무관청이 담당하고, 공익법인 지정과 세제 혜택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기부금품 모집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맡고 있다. 여러 기관이 기능을 나눠 관리하는 구조 속에서 비영리법인들은 설립부터 운영까지 복수 기관의 기준과 절차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의 비영리법인 설립 환경은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CAPS)가 발표한 'Doing Good Index 2026'에 따르면 '단체 등록이 쉽다'고 답한 한국 단체의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이는 아시아 평균인 37%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설립 승인을 담당하는 기관이 수십 개에 달하는 국가는 조사 대상 17개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립부터 과도한 행정재량…기본재산 기준도 모호
이날 포럼에서는 비영리법인의 가장 큰 문제로 '설립허가제'가 지목됐다. 이련주 좋은규제시민포럼 규제청원위원장은 설립 단계부터 과도한 행정재량이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비영리법인은 목적사업에 따라 각각 다른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주무관청을 판단하는 통일된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어떤 기관이 담당 기관인지 결정하는 데만 최대 2년이 소요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기본재산 기준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 지역은 기본재산이 전혀 없어도 법인 설립이 가능하지만 다른 지역은 최대 5000만원까지 요구하는 등 기준이 제각각이다. 같은 비영리법인이라도 어느 부처와 지자체의 관할을 받느냐에 따라 설립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셈이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의 강도는 더욱 심각하다.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대표는 한 비영리단체가 설립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주무관청으로부터 "재정적 기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됐지만, 정작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어야 적정한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제시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단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기본재산 기준금액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으며, 결국 발기인들은 출연금 규모를 계속 늘리고도 행정심판과 행정소송까지 거쳐야 했다. 김 대표는 18개 중앙부처를 조사한 결과 법인 설립을 위한 기본재산 기준을 공식적으로 정한 부처는 통일부 한 곳뿐이었다고 밝혔다.
설립 이후에도 규제 부담은 계속된다. 정관 변경이나 임원 취임 시 주무관청의 허가 또는 승인을 받아야 하고, 회의록 공증 등 인감 중심의 행정절차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기부금품 모집 비용은 모금액의 15% 이내로 제한돼 있으며, 법인은 매년 주무관청과 국세청에 서로 다른 양식으로 사실상 같은 내용을 두 차례 보고해야 한다.
법인의 자율적인 구조 개편도 쉽지 않다. 일반 기업에서는 흔한 합병·분할 제도가 비영리법인에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에 따라 사업영역을 조정하거나 조직을 재편하려 해도 법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국가의 관리·통제 중심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철 좋은규제시민포럼 이사장은 "규제를 받는 현장은 이미 수많은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규제기관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실질적인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배원기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장도 현행 제도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과 1958년 민법 제32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허가주의라는 낡은 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가 공익활동을 사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의 자율성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칙주의 전환·독립기구 '공익위원회' 신설 제시
포럼에서는 대안도 제시됐다. 우선 모든 주무관청에 적용되는 통일된 설립기준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제를 일정 요건만 갖추면 설립할 수 있는 준칙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공익법인 임원 승인제의 신고제 전환, 기부금품 모집 규제 완화, 수익사업 규제 개선, 법인 합병·분할 제도 도입 등이 개선 과제로 제안됐다.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팀장은 "비영리법인 설립 규제 개편은 실질적인 설계가 중요하다"며 "불허가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허가·불허가 통계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현재의 주무관청 제도를 폐지하고 공익활동 정책과 감독을 전담하는 독립적 기구인 '공익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익위원회가 설립될 경우 공익활동 촉진, 위험기반 감독, 분쟁조정, 정보공시와 기준 표준화 기능 등을 담당함으로써 복잡하게 분산된 현행 관리체계를 일원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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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동천 상임변호사는 "설립허가제의 준칙주의 전환과 함께 비영리부문 전체를 아우르는 독립적인 정책·감독기구 설치, 운영비 지원을 제한하는 지방보조금법·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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