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전기화의 꿈
재생에너지 늘어도 접속 지연·출력제어 빈번
주민·환경단체 반대로 송배전망·변전소 건설은 지연
이베리아형 재정전 막을 인프라 확충도 시급

편집자주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등으로 에너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에서 에너지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기자들이 다양한 현안들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반대 전국행동·경기행동은 28일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조기공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벌목 현장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2026.10.28.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반대 전국행동·경기행동은 28일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조기공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벌목 현장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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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에 있는 화곡저수지 인근 산비탈.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벌목 작업이 진행 중인 이곳에 천막 한 동이 설치됐다. 천막에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반대 전국행동'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전국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전력·용수 공급 계획,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따른 주민 피해, 산림과 농지 훼손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는 경기지역 시민단체뿐 아니라 공주·대전·충남 등 열거 지역의 송전탑 백지화 주민대책위원회도 참여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과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전력망 확충이 따라가지 못해 전국 곳곳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전력망 병목 현상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가 공격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으나 이를 받아줄 전력망이 부족해 접속 지연과 출력 제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인근 주민들과 환경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송·배전망과 변전소 건설이 지속해서 늦어지고 있다.

계통 포화로 접속 대기…호남에만 64.8%

31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6년 5월 기준 한국전력에 접속을 신청한 발전용량 3만8065메가와트(㎿)가운데 계통 접속(한국 전력망에 연결)을 마친 용량은 2만9382㎿로 파악된다.

남은 8683㎿중 약 41%인 3546㎿(약 3.5GW)는 한국전력의 계통 용량이 부족해 접속을 대기하고 있다. 한전에 접속 대기중인 용량의 64.8%인 2298㎿(약 2.3GW)는 호남권에 몰려있다. 이중 상당수가 재생에너지인 것으로 파악된다.


발전소는 짓는다고 해서 바로 전기를 생산해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전력의 계통(전력망)이 이를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발전소가 늘어나는 속도를 전력망이 뒤따르지 못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발전소가 많다.


계통 포화에 직면한 한전은 지난 2024년 5월 수용 용량이 포화한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다. 이중 호남지역이 164곳(광주·전남 103개소, 전북 61개소)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신규 발전소를 건설하더라도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된 지역에 해당할 경우에는 한전 전력망에 연결할 수 없게 된다. 한전은 계통보강이 이루어지는 2032년 이후에야 접속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접속 대기가 길어지자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의 불만이 확산했다.


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9월 29일 호남권 게통관리변전소를 해제하는 내용의 '전력망 혁신 대책'을 발표했다. 유연 접속 확대, 에너지저장장치(ESS) 활용, 허수 사업자 점검 등을 통해 여유 용량을 확보해 대기 중인 사업자에게 우선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는 이같은 정책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 김숙 사무총장은 "현장에서는 지자체와 한전에서 정확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고 실제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내년부터는 신규 사업자에 대해서도 접속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태양광 사업자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송·배전망을 확대하지 않고서는 접속 지연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력망 부족은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햇빛소득마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이달 초 발표한 햇빛소득마을 2차 공모사업 선정 결과를 보면 선정 마을 436곳중 사업 요건을 충분히 갖춰 신속히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곳은 5%인 23개 마을에 불과했다. 95%인 414곳은 부지 임대, 자금계획, 계통연계 등에서 보완이 필요한 조건부였다.


조건부 선정 마을 중 상당수는 계통 부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햇빛소득마을 1차 공모에서 선정된 86개 마을중 58곳(67.4%)은 계통보완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생에너지 발목 잡는 송·배전망

부족한 계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송·배전망과 변전소를 확충해야 한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송전망, 변전소, 배전망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송전망은 154킬로볼트(㎸), 345㎸, 765㎸ 등 초고압으로 발전소와 변전소를 잇는 전력망을 말한다. 배전망은 변전소에서 22.9㎸로 전압을 낮춘 전기를 각 소비자에게 보내는 전력선을 말한다.


한국전력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망한 전력 수요에 맞게 송·변전 계획을 수립하고 송전망과 변전소를 구축한다. 발전 설비는 대부분 전기본에 따라 갖추어지는 반면 송·변전 설비는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김위상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송·변전 설비 계획상 계획 물량은 7266 서킷 킬로미터(c-km)였지만 실제 준공 물량은 2202c-km에 불과해 준공률이 30.3%에 그쳤다. 송·변전 설비 구축에는 통상 9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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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지연은 배전망도 마찬가지다. 태양광 발전소의 대부분이 배전망에 접속하기 때문에 배전망 확충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특별히 중요하다. 하지만 장기 배전 계획이 시작된 2024년에 착공한 사업 23건중 준공은 12건(52.2%)에 그쳤다. 2025년에는 35건중 3건만 준공됐다.


김숙 전국태양광발전협회 사무총장은 "AI로 인해 청정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에너지 자립이 중요해지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목표치는 높아지고 있지만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위해서는 결국 계통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변전소 확충도 시급하다. 한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3417㎿ 규모의 접속 대기를 해소할 방침이다. 67.7%에 해당하는 2314㎿에 대해서는 변전소 30개를 지어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변전소 건설 역시 곳곳에서 멈춰 서 있다.


변전소 건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하남 동서울변환소다. 동서울변환소 건설 사업은 기존 345kV급 야외 변전 설비를 옥내화하고, 부지 내에 500kV급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소를 신설해 송전 용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 골자다. 동해안의 대규모 발전 전력을 수도권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보내는 핵심 관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반대와 지자체의 인허가 불허로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변환소 증설이 지연되면 수도권 및 반도체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동해안의 석탄발전소들은 전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해 가동률이 급락하며 연간 수천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변환소 건립이 무산되면 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가동해야 하고 이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 한전은 지난 2024년 사업이 좌초될 경우 연간 3000억원의 전력 구입비가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베리아형 대정전' 막으려면

2025년 4월 28일 12시 33분(현지 시각) 스페인 본토와 포르투갈 전역의 전력 시스템이 완전히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스페인 국경과 인접한 프랑스 남서부 일부 지역에서도 매우 짧은 시간 정전이 있었다. 이른바 '이베리아 반도 대정전'이다.


스페인에서는 사고 직후 약 5초 만에 15GW가량의 발전량이 계통에서 사라졌다. 고속철도 등 교통이 마비됐으며 통신과 금융에 장애가 발생했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고 병원들은 비상 발전기를 가동해야 했다. EU 집행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약 4460만 명, 포르투갈 약 640만 명 등 총 5100만 명이 정전 피해를 보았다.


포르투갈 송전망은 사고 약 12시간, 스페인 송전망은 약 15시간 30분 만에 복구됐다. 20년 만에 유럽 전력 시스템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정전 사태로 기록됐다. 사고 직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초기에는 급격히 증가한 재생에너지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약 1년 뒤인 2026년 3월, 49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작성한 유럽송전계통운영자협회(ENTSO-E)의 최종 조사 보고서의 내용은 달랐다. 재생에너지 급증 자체보다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전력망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전압과 주파수가 허용 범위 내에서 유지돼야 한다. 화석연료 발전소나 원전 등 기존 발전소는 회전하는 발전기를 통해 일정한 주파수의 교류 전력을 생산한다. 이들 발전기는 회전체의 관성으로 주파수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완화하며, 무효전력 공급과 흡수를 통해 전압을 조절할 수 있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한다. 태양광은 직류 전기를 생산하고, 풍력은 교류 전기를 생산하지만 회전속도 등에 따라 출력 특성이 달라진다. 따라서 태양광과 상당수 풍력발전 설비는 인버터 등 전력변환장치(PCS)를 통해 전력망에 연결된다. 이러한 설비도 적절한 제어 기능을 갖추면 전압과 주파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베리아 대정전의 경우 전력망의 전압제어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계통 진동과 발전설비의 연쇄 탈락이 발생하면서 전압이 급격히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압이 상승하면 발전설비나 전력망 장치가 무효전력을 흡수해 전압을 낮춰야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제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일부 발전설비가 전압 상승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연쇄적인 발전기 차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태양광 발전설비는 무효전력을 적극적으로 조절하지 않는 고정역률 방식으로 운전돼 전압 안정화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 역률이란 전기 설비가 미리 정한 역률 값을 유지하도록 운전하는 방식이다.

전기, 만들어도 보낼 수 없다…재생에너지의 진짜 병목들[에너지 오디세이](16) 원본보기 아이콘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발전설비의 전압제어 기능과 전력망 안정화 장치를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베리아형 대정전을 막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완화해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뿐 아니라 전압 변동 시 신속하게 무효전력을 공급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


한국전력은 고정역률 1.0으로 배전망을 운영하고 있다. 고정역률이 1.0이란 전체 공급 전력 가운데 실제 일을 하는 전력(유효전력)이 100%라는 뜻이다. 전력 설비에서 고정역률이 높으면 전압을 조절하는 무효전력이 부족해 전압이 갑자기 상승하거나 떨어질 때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전 전력 계통에 연계된 태양광 인버터 33.4GW 가운데 과전압 상황에서도 버티는 기능(HVRT)을 갖춘 설비는 1.2GW(3.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전압·저주파수 지속 운전 기능(LVRT·LFRT)을 보유한 설비도 15.3GW(45.8%)로 절반에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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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2025년 이베리아 반도 대정전의 직접 원인이 과전압이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성능개선 예산과 계통안정 설비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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