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보이샤 블라디사블례비치 베오그라드대 교수
교수·의사 등 전문가 합류로 신뢰 확보
민주주의 회복·사법부 개혁 최대 과제

"부치치는 이제 완전히 신뢰를 잃었고 세르비아의 변화를 막을 수 없습니다."


네보이샤 블라디사블례비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 정치학 교수는 30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를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정치학자로, 권위주의·민주화, 사회운동과 혁명 등을 연구했다.

네보이샤 블라디사블례비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 정치학 교수. 고란 스르다노프·라다르 제공

네보이샤 블라디사블례비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 정치학 교수. 고란 스르다노프·라다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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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세르비아 조기 총선에서 학생 주도 정치세력인 '학생명부(Student List)'는 52.7%를 득표하며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의 집권 세력을 꺾었다. 선거법상 정당을 창당하지 않고도 시민그룹의 자격으로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제출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4년 11월 '노비사드 기차역 붕괴 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2년여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12년의 장기 집권 체제를 끝낸 주역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사실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블라디사블례비치 교수는 조기 총선에서 학생들이 정치적 승리를 거둔 배경으로 기성 야당이 끌어안지 못했던 정치 무관심층과 부동층의 결집을 꼽았다. 야당은 정권의 집중 공격으로 지지층 확대에 실패했지만, 2024년 말 등장한 학생들이 전국적인 행진에 나서면서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명부의 압승은 빙산의 일각이자 수십만명이 참여한 2년간의 비폭력 저항이 정점에 이른 결과"라고 평가했다.

학생들이 정치적 대안으로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참여도 있었다. 학생명부가 제시한 총선 후보 250명은 '학생총회'라 불리는 내부 평의회 조직에서 뽑은 후보들이다. 교수, 의사, 농민 등 정치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블라디사블례비치 교수는 "기존 공직자들이 신뢰를 잃고 야당 지도자들이 오랜 기간 인신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지식과 직업적 신뢰도가 매력적인 정치적 대안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거 승리가 곧 민주주의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블라디사블례비치 교수는 새 정부가 공무원 조직과 보안기관, 사법부, 공영방송 등 부치치 집권 기간 훼손된 공공기관을 개혁할 수 있을지가 핵심 과제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학생운동이 성공을 이어가려면 기존 야당과 시민사회,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블라디사블례비치 교수와의 일문일답.


-야당은 오랫동안 부치치 정권에 맞서왔지만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 학생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명부의 압승은 2년간 수십만 명이 참여한 비폭력 운동의 결실이다. 학생들이 주도한 폭넓은 정치·사회 연합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회복, 만연한 부패와 연고주의 종식을 요구해 왔다. 이런 대중의 참여는 지난 10년간 야당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존 야당은 부치치가 통제하는 언론과 보안기관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으며 핵심 지지층을 넘어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2024년 말 대학 점거로 정치 무대에 등장한 학생들이 전국을 누비며 장거리 행진을 이어가자 상황이 역전됐다. 학생들에 대한 지지도 급격히 높아졌다.


-2024년 노비사드 참사 항의는 어떻게 전국적인 정치운동으로 발전했나. 학생들이 세대와 계층을 넘어 지지를 얻은 이유는 무엇인가.

▲부치치가 16명이 숨진 노비사드 참사에 대한 공직자들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시위가 촉발됐다. 처음에는 야당이 주도했지만 몇 주 만에 학생들이 주도권을 넘겨받았다. 전국 5개 국립대학의 점거는 교사들의 파업으로 번졌고, 학부모와 농민, 변호사, 예술가 등 각계각층이 동참했다. 2025년 3월 베오그라드 집회에는 인구의 4~5%인 30만명이 모였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성인의 30% 이상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자원을 기부했다. 정부의 강경 진압은 오히려 시민불복종 운동을 확산시켰다. 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민들까지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학생명부가 제안한 후보에는 교수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전문성과 대중적 신뢰가 모두 작용했나.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을 지지했던 사례와도 유사한가.

▲초기부터 대부분의 교수와 대학 총장, 학장들이 학생들의 대학 점거를 지지했다. 정부가 무력 진압과 친정부 언론을 통한 비방에 나서자 교수들은 학생들을 보호했고, 그 결과 수개월간 급여를 받지 못했다. 세르비아에는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 전통이 있다. 1968년 공산주의 체제와 1990년대 밀로셰비치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대한 학생 시위에서도 교수들이 학생들을 지지했다. 기존 공직자와 야당 지도자들이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교수와 의사, 엔지니어,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지식과 직업적 신뢰도는 매력적인 정치적 대안이 됐다.


-학생명부에는 지도부가 없고 후보들의 배경도 다양하다. 효과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할지, 집권 이후 최대 위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번 운동의 핵심 특징은 지도자가 없는 수평적 조직 구조다. 월가 점령운동,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운동,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운동과 유사하다. 학생들은 전국 곳곳에 지역 주민총회도 만들었다. 다만 학생운동은 많은 야당을 포함한 폭넓은 정치·사회 연합을 이끌고 있다. 야당의 인력과 조직 자원, 경험도 대중 동원과 선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학생명부가 제시한 후보자의 과반수가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상당수는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새 의회 다수파는 수주 내 전문가 정부를 출범시킬 것이다. 이 정부는 민주주의 회복과 법치주의 확립, 부패 척결을 추진할 강력한 국민적 위임을 받게 될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부치치 정부의 유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부치치는 이제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다가오는 변화를 막을 수 없다. 향후 몇 달간 집권당 지지율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 헝가리 총선 패배 이후 빅토르 오르반의 피데스가 겪은 지지율 하락과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제는 많다. 핵심은 새 정부가 공무원 조직과 보안기관, 사법부, 공영방송, 지방정부를 개혁할 수 있느냐다. 부치치는 2012년 이후 개인 중심의 자의적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이들 공공기관을 체계적으로 훼손했다. 세르비아가 향후 몇 년 안에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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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정치·사회적 환경은 특수하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시민사회와 정치운동이 참고할 만한 교훈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교훈은 권위주의·포퓰리즘 정부에 맞서려면 선거운동 기간뿐 아니라 평소에도 폭넓은 대중 동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청년 참여가 필수적이다. 청년들의 수평적 조직 방식은 그동안 활용되지 못한 정치적 에너지를 끌어내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강한 헌신을 이끌어낸다. 이는 야당 지도자와 저명한 정부 비판자를 공격해 신뢰를 훼손하는 데 능숙한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된다. 다만 학생·청년운동이 성공하려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대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다양한 분야와 계층,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정치·사회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기자가 작성하고 AI가 부분 보조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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