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미대 학장 지낸 문철, 시 낭송회에서 시작한 초상화 연작
장미의 '찰나'에서 얼굴의 내면으로…시와 그림의 오랜 교감
지난해 김혜주 시인과 초현실 드로잉 협업…이번엔 유화 초상 22점
11월 3~9일 서울 중구 예문갤러리…시인의 얼굴과 대표시 함께 전시
시는 종이에 쓰이지만, 시인의 삶은 얼굴에도 남는다. 오래 생각한 사람의 눈빛, 말하기보다 침묵하는 데 익숙한 사람의 표정, 웃음과 슬픔이 지나간 자리. 화가 문철은 어느 날 시 낭송회에 갔다가 그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시는 종이 위에서 읽던 문장과 달랐다. 그는 그 울림을 그림으로 옮기기로 했다. 언어가 남긴 흔적을 얼굴에서 찾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는 11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중구문화원 예문갤러리에서 열리는 문철 화백의 개인전 '시인, 그 얼굴의 문장' 포스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문 화백이 시인 22명의 얼굴을 유화로 그려 각 시인의 대표시와 함께 선보이는 전시다. 중구문화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문철 명예교수가 시인 22명의 얼굴을 그린 개인전 '시인, 그 얼굴의 문장'을 오는 11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중구문화원 예문갤러리에서 연다. 시인들의 초상과 대표시를 나란히 배치해 한 사람의 얼굴과 그가 써온 문장을 함께 읽도록 구성한 전시다.
출발점은 우연히 참석한 시 낭송회였다. 시인의 육성으로 전달되는 언어의 생명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문철은 기존 작업을 잠시 미루고 초상화에 매달렸다. 이번에는 상상 속 인물을 그리지 않았다. 각자의 문학 세계를 일궈온 시인 22명을 전통 유화 기법으로 그렸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처음부터 초상화에 집중했던 화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철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와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한 뒤 홍익대 교수와 미술대학 학장을 지냈다. 40년 넘게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며 광고와 포스터, 기업 이미지(CI), 책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시각언어를 다뤘다.
2025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문철-시각디자인 48년 그리고 지금(1976~2025)'에는 서울예고 재학 시절의 첫 디자인 작업부터 정년퇴임 이후의 작품까지 200여점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해 온 긴 시간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순수회화에 몰두한 것은 정년퇴임 이후다. 2023년 개인전 'The Moment'에서는 장미를 그렸다. 꽃이 활짝 피었다가 시들기 직전, 가장 아름다운 상태와 소멸의 기미가 맞닿는 순간이었다. 당시 그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찰나'를 붙잡고 싶다고 했다. 만개한 장미를 통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 작업이었다.
꽃을 그리던 화가의 관심은 이후 사람의 얼굴로 옮겨갔다. 지난해 시인 김혜주와 함께한 'B flat' 작업이 중요한 연결고리다. 김혜주의 두 번째 시집 'B flat'에는 문철이 그린 연필 드로잉 30점이 실렸다. 얼굴을 소재로 삼되 눈에 보이는 형태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점과 선, 면을 결합한 초현실적 이미지로 감정과 상징을 표현한 작업이다.
김혜주의 시와 문철의 그림이 한 권의 책 안에서 만났다면, 이번에는 시인의 얼굴과 시가 한 전시장 안에서 마주한다. 시와 그림이 서로를 설명하는 삽화나 해설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시도다.
얼굴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초상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교하게 닮게 그려도 그가 살아온 시간과 내면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문철이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것도 바로 그 간극이다.
화가는 외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어의 행간에 스며든 감정과 사유를 표정과 눈빛으로 표현하려 했다. 한 사람의 시를 읽은 뒤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읽히고, 얼굴을 오래 들여다본 뒤 시를 읽으면 문장의 결이 달리 느껴질 수 있다.
문철은 "시인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표정 너머의 내면과 시에 새겨진 삶의 궤적을 헤아리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과 시가 서로의 깊이를 더해 관람객들이 마치 시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낭송회 현장에 선 듯한 감동을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그림이 시를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는가가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쓴 사람의 얼굴을 알게 됐을 때 그 문장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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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1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 1층 중구문화원 예문갤러리에서 열린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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