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반포 580년·'가갸날' 제정 100년 기념 국제포스터전
국내외 디자이너들, 한글의 형태·여백·리듬을 시각예술로 재해석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DDP 둘레길…문자에서 조형언어로 확장
'ㄱ'은 두 개의 직선이 만나는 모서리이고, 'ㅇ'은 시작과 끝이 맞닿은 원이다. 글자를 읽지 않고 모양만 바라보면 익숙한 한글이 낯선 그림처럼 다가온다. 선과 점, 원과 네모. 뜻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디자인이다. 한글의 다음 100년을 묻는 전시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둘레길에서 열리는 국제포스터전 '한글, 새로운 100년' 포스터.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가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로, 국내외 디자이너들이 한글의 조형적 특징을 현대 시각예술로 재해석한다.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둘레길에서 국제포스터전 '한글, 새로운 100년'을 개최한다.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한글의 조형적 가능성을 살펴보는 자리다.
두 기념일이 겹친 올해는 한글의 역사를 돌아보기에 특별한 해다. 1446년 세종이 반포한 훈민정음은 백성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마련한 문자였다. 480년이 흐른 1926년에는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가갸날'을 제정했다. 오늘날 한글날의 출발점이다.
580년 전에는 문자를 만들어 소통의 문을 열었고, 100년 전에는 그 문자를 지키기 위해 기념일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그 역사 위에서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앞으로 한글은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답을 찾는 방식은 문자로 문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문자 자체를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전시에는 VIDAK 회원과 국내외 추천 작가들이 참여한다. 디자이너들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형태, 획 사이의 간격과 반복에서 비롯되는 리듬을 각자의 포스터로 풀어낸다. 우리가 의미를 읽느라 미처 살피지 않았던 글자의 생김새가 작품의 중심으로 옮겨오는 셈이다.
한글의 독특한 성질도 이러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자음과 모음을 모아 하나의 음절을 구성하는 방식은 글자 내부에 다양한 공간을 만든다. 같은 자모라도 어떻게 배치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진다. 디자이너들에게 한글은 완성된 문자이면서 동시에 해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조형의 재료인 것이다.
포스터부터 전시는 이러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푸른 실이 얽혀 구(球)를 이루고, 붉은 실은 기하학적 구조를 만들며 아래로 뻗는다. 수많은 선이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한글, 새로운 100년'이라는 제목은 익숙한 글자를 고정된 기호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연결과 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공간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DDP 둘레길은 미술관의 일반적인 전시실과 달리 완만한 경사와 곡선을 따라 이동하는 공간이다. 관람객은 한자리에 서서 작품을 바라보기보다 걸음을 옮기며 포스터들을 차례로 만난다.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가 공간을 걷는 경험과 맞물리는 것이다. 한글의 과거를 되짚고 현재의 디자인을 거쳐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한다는 전시의 취지가 길을 따라 펼쳐진다.
한글을 활용한 시각 디자인은 아름다운 글씨를 만드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문자의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은 글자가 어디까지 변해도 한글로 인식될 수 있는지, 읽기 쉬운 문자와 보기 좋은 이미지의 경계는 어디인지 묻는다. 매일 쓰는 글자이기에 오히려 보지 못했던 형태와 구조가 그 실험의 출발점이다.
580년 전 훈민정음은 백성이 자신의 뜻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00년 전 가갸날은 그 문자를 지키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보존과 계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전시가 제안하는 문제의식이다. 한글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 못지않게, 그 문자로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키오스크 겨우 배웠는데 이젠 또?"…밥 한 끼 먹기도 힘든 어르신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ㄱ'과 'ㅇ'은 너무 익숙해서 더는 눈여겨보지 않는 글자다. 이번 전시는 그 익숙함을 잠시 거둬낸다. 수백 년간 변함없이 써온 글자에서 아직 보지 못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면, 한글의 새로운 100년은 이미 그 안에서 시작된 셈이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둘레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