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작가 듀오 로와정의 '미술관 길목 프로젝트' 개최
거울에 비친 문장·미세하게 움직이는 풍경…익숙한 시선 뒤집는 두 작품
상당산성 등 청주 네 곳 담은 영상, 건물 외벽 대형 미디어캔버스로 상영
31일부터 내년 6월까지…미술관 야외 무료 관람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여러 색의 실로 수놓은 패널이 서 있다. 병풍처럼 늘어선 패널의 앞면에는 추상적인 무늬가 보인다. 그런데 그 옆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문장이 나타난다. '내일로 가는 방법.' 조금 전까지 읽을 수 없었던 무늬가 거울 속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된다. 작품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시선을 바꾸는 순간,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예술적 경험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외벽 미디어캔버스에 상영되는 작가 듀오 로와정의 영상작품 '스틸 라이프_산책청주(상당산성)'(2026). 청주 상당산성의 풍경 위로 'STILL LIFE'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정물'이자 '여전히 이어지는 삶'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통해 멈춘 듯한 풍경 속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외벽 미디어캔버스에 상영되는 작가 듀오 로와정의 영상작품 '스틸 라이프_산책청주(상당산성)'(2026). 청주 상당산성의 풍경 위로 'STILL LIFE'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정물'이자 '여전히 이어지는 삶'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통해 멈춘 듯한 풍경 속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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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31일부터 2027년 6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미술관 길목 프로젝트: 로와정'을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미술관 길목 프로젝트'는 전시실 밖으로 미술관의 경계를 확장하는 야외 프로젝트다. 관람객이 무심코 지나치는 진입로와 건축물 외벽에 작품을 설치해 주변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는 노윤희와 정현석으로 구성된 작가 듀오 로와정이 참여했다. 두 작가는 일상적인 사물을 낯선 위치에 놓거나 언어와 이미지를 어긋나게 배치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의 질서를 탐구해 왔다.


선보이는 작품은 설치작품 '패시지(Passage)'와 영상작품 '스틸 라이프(Still Life)' 두 점이다.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설치작품과, 정지된 듯한 화면에서 시간의 흐름을 발견하게 하는 영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각적 경험을 확장한다.

진입로에 설치되는 '패시지'는 여러 색의 실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수놓은 패널들을 서로 다른 높이와 방향으로 배열한 작품이다. 벽면의 거울을 가리는 병풍 같은 구조물을 따라 걸으면 거울에 비친 패널 뒷면에서 '내일로 가는 방법'이라는 문장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문장은 처음부터 온전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관람객이 어느 위치에 서서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흩어진 글자와 추상적인 형상이 달리 보인다. 거울은 분리된 요소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하는 장치다.


작품 제목인 '패시지'는 통로를 뜻하는 동시에 글의 한 구절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실제로 길을 걷는 행위가 문장을 읽는 경험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익숙한 방향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의미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내일로 가는 방법'이라는 문구도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미술관 외벽의 대형 미디어캔버스에서는 '스틸 라이프'가 상영된다. 화면에 등장하는 곳은 청주의 상당산성과 탑동 양관, 솔밭공원, 충북대학교다. 역사적 장소부터 시민들의 일상 공간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네 곳의 풍경을 담았다.


영상 속에는 흰색 실로 'still life'라는 문구를 수놓은 모기장이 등장한다. 모기장 너머로 나무와 건축물, 주변 풍경이 보이고, 그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세하게 달라진다.


영어 'still life'는 미술에서 정물을 뜻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삶'으로도 읽을 수 있다. 로와정은 이중적인 의미를 활용해 멈춰 있는 듯한 풍경 속에서도 시간과 삶의 움직임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번 작품은 작가들이 국내외 여러 장소에 모기장을 설치하고 그 위에 문장을 수놓아 영상으로 기록해 온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청주의 익숙한 풍경 역시 투명한 천과 실로 만든 글자라는 장치를 거치면서 낯선 이미지로 바뀐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움직인다. '패시지'에서는 실제 몸을 움직여 거울 속 문장을 찾아야 하고, '스틸 라이프'에서는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볼수록 정지된 듯한 풍경의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로와정은 2008년부터 국내외에서 활동해 온 작가 듀오다. 서로 다른 생각을 대화와 조율을 통해 하나의 작업으로 발전시키며 사물과 환경, 사회적 관습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2024년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눈길에도 두께와 밀도가 있다'를 열었고, 2018년 광주비엔날레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Lesson 0'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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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과 건축물 외부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예술을 만날 수 있다"며 "관람객이 로와정의 작품을 따라 걸으며 익숙한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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