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장 국내 첫선·요리사 출신 첫 호텔신라 임원…화려한 이력 뒤 '일하는 법'
"책임감은 직원에게, 책임은 리더에게"…77세 사부가 말하는 '기본'

58년 동안 중식도를 잡은 요리사가 첫 책을 냈다. 그런데 레시피가 없다. 광둥요리의 고급 보양식 '불도장'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비법도, 호텔 중식당을 정상에 올려놓은 조리 노하우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런 문장이 있다.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감'이고, 최종적인 '책임'은 리더인 자신이 진다는 것. 후덕죽 셰프(77)가 오래 요리한 끝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음식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에세이 '기본에 대하여'를 출간한 중식 대가 후덕죽 셰프가 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세이 '기본에 대하여'를 출간한 중식 대가 후덕죽 셰프가 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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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만난 후 셰프는 첫 에세이 '기본에 대하여'를 펴낸 이유를 "60년 가까이 해온 일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만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질문이 미쉐린 별을 향하면 그는 단골손님을 이야기했고, 방송 출연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요리하는 사람이 주방을 지키는 게 기본"이라는 말도 했다. 대가의 입에서 나온 '기본'치고는 싱겁게 들릴 만큼 평범하다.


그 평범한 말을 하는 데 58년이 걸렸다.

후덕죽의 이력은 한국 호텔 중식의 역사와 상당 부분 겹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는 1968년 UN센터호텔 주방에 들어갔다. 반도호텔을 거쳐 일본에서 광둥요리를 익혔고, 1977년 호텔신라 중식당 '팔선'의 창립 멤버가 됐다. 1987년 불도장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고, 1994년에는 요리사 출신 최초로 호텔신라 임원이 됐다. 42년간 호텔신라에 몸담은 뒤에도 은퇴하지 않았다. 지금도 앰배서더 서울 풀만 중식당 '호빈'의 주방에 선다.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그 '임원 후덕죽'이다. 칼과 웍을 잘 다루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오래 할 수 없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주방장이 되고 조직의 책임자가 되면서 현장의 언어 외에 경영의 언어를 익혀야 했다. 다른 부서와 소통해야 했고, 좋은 요리를 지속하려면 조직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요리사의 기본이 맛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과 조직으로 넓어진 것이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2’의 한 장면. 팀 경연에서 경력과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후배들과 역할을 나누고 묵묵히 힘을 보태는 모습은 방송 이후 이른바 ‘덕죽적 사고’로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2’의 한 장면. 팀 경연에서 경력과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후배들과 역할을 나누고 묵묵히 힘을 보태는 모습은 방송 이후 이른바 ‘덕죽적 사고’로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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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본에 대하여'가 꼽는 네 가지도 요리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근성, 방향성, 호기심, 사람. 버티되 아무 방향으로나 버티지 않고, 익숙해져도 계속 궁금해하며,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속도는 효율을 높여주지만 기본을 대신하진 않는다"는 그의 말에는 오랜 현장 생활의 체념보다는 경험에서 나온 경계심이 묻어난다. 빨리 익힌 기술은 있을 수 있어도 빨리 만들어지는 요리사는 없다는 뜻에 가깝다.


올해 '흑백요리사2'를 통해 대중이 발견한 이른바 '덕죽적 사고'도 사실 새로 생긴 캐릭터는 아니다. 반세기 넘는 경력의 대가가 후배들의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지만, 후덕죽에게는 오래된 주방의 질서였다. 그는 책에서 혼자 앞으로 달려나가면 그것은 '그 사람의 요리'일 뿐 '우리의 요리'는 될 수 없다고 썼다.


온화함만으로 설명하기에도 부족하다. 후덕죽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일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후배에게 필요한 쓴소리를 피하지 않는다. 대신 책임의 선은 명확하다. 실무자는 자기 일이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책임은 리더인 내가 지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부드러운 리더십이라기보다 꽤 오래된 사부의 윤리에 가깝다.


여기에는 변화에 대한 그의 태도도 섞여 있다. 1970년대 일본에서 새로운 중식을 배워왔던 사람은 일흔을 넘어서도 낯선 세계를 궁금해한다. 그는 "편하지 않은 낯선 것도 해봐야 후배들과 나란히 살아갈 수 있다"고 썼다. 기본을 지킨다는 말이 예전 방식을 고집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려면 중심이 먼저 있어야 한다.

58년 칼을 잡은 후덕죽, 첫 책엔 레시피가 없다[김희윤의 책섶] 원본보기 아이콘

책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요리'라는 단어보다 '사람'이 자주 남는다. 중식에서 주방장을 '사부(師傅)'라고 부르는 것은 조리법뿐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요리사로 살아가는 자세까지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제 그가 품은 두 번째 꿈도 자신의 기술과 마음이 후배들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첫 책에 레시피가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후덕죽이 58년 동안 배운 '기본'은 접시 위에만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는 손님이 먹고 사라진다.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결국 사람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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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대하여 | 문학동네 | 후덕죽 | 296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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