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루빈 기반 'DSX 포드' 발표
턴키 공급으로 빅테크 자체 칩 견제
'커스텀 HBM' 시험대 선 삼성·SK

엔비디아가 공장에서 완제품 형태로 사전 검증해 공급하는 '모듈형 데이터센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차세대 아키텍처 '베라 루빈' 기반 인프라 구축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최단 14일로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공지능(AI) 칩 공급을 넘어 데이터센터 전체를 턴키(일괄 공급)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엔비디아의 생태계 확장 전략이 가시화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TC 베를린'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TC 베를린'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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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완제품 직배송…젠슨 황의 노림수는

31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PU(그래픽처리장치) 기술 컨퍼런스 'GTC 베를린'에서 차세대 모듈형 데이터센터 설계 규격인 'DSX 포드(DSX POD)'를 전격 발표했다. 전력, 냉각, 네트워크 등 기반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전제하에 현장 설치 기간을 6개월에서 최단 14일로 단축하는 설계로, 내년 초부터 공급을 시작한다는 목표다.

그동안 AI 데이터센터 구축은 최신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조달하더라도 현장에서 랙을 짜고 복잡한 액체냉각 배관과 초고속 네트워킹을 테스트하느라 수개월이 소요됐다. 발열과 전력 소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현장 설치가 AI 인프라 확장의 주요 병목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엔비디아는 공장에서 칩, 랙, 냉각 모듈, 네트워킹을 하나로 묶어 사전에 완벽히 검증한 뒤 출하하는 방식으로 이 병목을 해소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엔비디아, '모듈형 DC'로 생태계 통제…"삼전닉스엔 기회"[칩톡] 원본보기 아이콘

이는 데이터센터 설계 패러다임 자체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기존 데이터센터가 부지와 토목 등 '건물 중심'의 개념이었다면, 모듈형은 'GPU 중심'의 고밀도 AI 팩토리를 구현하는 개념"이라며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원하는 초고효율 인프라를 신속하게 구현할 수 있어 향후 데이터센터 시장의 축이 모듈형으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모듈형 시스템을 앞세워 빅테크의 자체 칩(ASIC) 전환 흐름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이 자체 가속기를 개발해 인프라를 직접 구축할 경우 설계부터 배포까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반면 엔비디아의 사전 검증형 DSX 포드를 도입하면 단 2주 만에 가동할 수 있어 빅테크를 엔비디아 생태계에 묶어둘 수 있게 된다.

이 교수는 "빅테크가 자체 칩을 개발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고성능 GPU를 아예 쓰지 않을 수는 없다"며 "모듈형 시스템을 통해 GPU 서버 구축 속도와 효율을 끌어올리면, 고객사 입장에선 자체 칩을 적게 쓰고 GPU 비중을 유지하게 돼 일종의 견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천~수만평 규모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기 어려운 '네오 클라우드(중소형 AI 연산 인프라 대여 기업)' 사업자들에게도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도 시설 전체를 중단할 필요 없이 특정 모듈 유닛만 갈아 끼워 성능을 즉각 올릴 수 있어 부분 교체 수요를 끌어들이기 쉽다는 평가다.


기성복서 맞춤형으로…韓 메모리엔 과제이자 기회

엔비디아가 서버 랙과 모듈 전체를 묶어 파는 턴키 체제를 강화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들이 마주할 시장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표준화된 규격으로 찍어내던 HBM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 시스템 모듈에 최적화된 '커스텀(맞춤형) HBM' 방식으로의 전환이 한층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모듈 내부의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메모리 스펙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모듈형 시스템은 전력과 공간, 발열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최고 출력만 고집하기보다는 대역폭을 유지하되 전력 소모와 발열을 낮추는 식의 세부 튜닝이 요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엔비디아가 모듈 완제품의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메모리 제조사들에게 자체 파운드리 다이 대신 통일된 베이스 다이 규격을 제안하거나 특정 사양의 획일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모듈 단위 납품과 빅테크별 맞춤형 수요가 맞물리면서 커스텀 메모리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며 "결국 엔비디아의 시스템 검증 기준과 모듈 규격을 얼마나 정밀하게 충족하느냐가 향후 HBM 및 차세대 메모리 주도권 경쟁의 핵심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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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변화가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성능 GPU를 채워 넣은 모듈이 늘어날수록 차세대 HBM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첨단 패키징과 전력 낭비를 줄여주는 전력 반도체, 액체냉각 장비 등 주변 밸류체인으로 낙수효과가 확산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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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모듈형 데이터센터의 확산은 고성능 GPU 서버 확대를 의미하며, 이에 맞춘 차세대 HBM 수요 증가와 첨단 패키징 고도화를 필수적으로 수반한다"며 "더불어 전력 변환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력 반도체와 냉각 장비 등 관련 인프라 전반에서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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