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바꾼 기관들의 '수사 공백'
공소청 직접수사 유예 90일 남아
길 잃은 사건들 제자리 찾아줘야

[영역:young域]미제 사건 18만건의 행방
AD
원본보기 아이콘

"제 사건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검찰청이 문을 닫은 지 한 달, 법률사무소에 가장 많이 걸려 오는 전화다. 변호사라고 답을 아는 것도 아니다. 수사와 기소를 나누는 78년 만의 대전환을 두고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법체계에 찬반이 있을 수는 없다.

숫자부터 보자. 9월 말 전국 미제 사건은 18만6000여건, 한 달 새 2만건 넘게 불었다. 검사 1인당 미제는 2년 전의 네 배가 넘는다는 것이 법무부의 국감 답변이다. 새로 문을 연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형사사법정보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해 영장을 종이로 청구하고, 사건 기록은 출력해 사람이 실어 나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출범 2주가 지나도록 공소청에서 중수청으로 넘어간 미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국무조정실장은 국감에서 "일부 혼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지금의 상황은 혼선이 아니라 공백이다.


개혁 논쟁은 4년 내내 '누가 수사하느냐'를 두고 벌어졌다. 그 싸움에서 한 번도 주어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고소인이다. 권력기관의 자리를 다시 배치하는 설계도에 사건 당사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공백이다. 기관은 간판을 바꿔 달고도 월급이 나오지만, 고소인의 시간은 아무도 보상하지 않는다. 떼인 전세보증금, 사기로 날린 몇백만 원은 수사가 늦어질수록 돌려받을 길이 멀어지고, 그 사이 가해자는 재산을 빼돌릴 시간을 번다. 권력형 사건은 카메라가 지켜보지만, 서민의 고소장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

설계도의 빈자리는 조문에도 그대로 남았다. 개정 형사소송법 제245조의13 제3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검사는 피해자에게서 자료를 받을 수는 있어도 그 자료를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공판검사에게 증거를 내면 검사가 검토해 법원에 신청하면 됐다. 이제는 그 당연한 절차가 법 위반 시비의 대상이 된다. 공소 제기 뒤 피해자가 스스로 낸 증거를 법원에 내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공소유지니까 괜찮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조문은 '수사'만이 아니라 '사실관계 확인'으로 얻은 자료까지 배제하고, 공소유지를 위한 사실관계 확인까지 거기에 넣고 있다. 조문이 그렇게 서 있는 한 피고인 쪽은 사건마다 증거능력을 다툴 것이고, 재판부마다 결론이 갈릴 것이다.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증거가 피해자 손에 있는데도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는 셈이다.


더 큰 파도는 연말에 온다. 공소청이 직접수사 사건을 붙들고 처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 90일이 12월 말 끝난다. 한 현장 검사는 "손도 대지 않은 사건을 90일 안에 마무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처리되지 못한 사건은 경찰과 중수청으로 넘어가 인계와 재배당을 처음부터 다시 거친다. 공소청은 "일괄 이관은 없다"고 하지만, 순차 이관이면 기다림이 길어질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예기간이 끝나는 12월은 중수청 전산망이 겨우 정상화되는 달이기도 하다. 두 시한이 겹치는 지점에 대책이 없다.


개혁의 시계를 되돌리자는 말이 아니다. 길 잃은 사건을 찾아 주자는 말이다. 세 가지면 된다. 첫째, 사건이 기관을 옮길 때마다 고소인에게 이관 사실과 담당 기관을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 택배 한 상자도 위치가 뜨는 나라에서 형사사건의 행방을 모른다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둘째, 전세사기·보이스피싱처럼 피해 회복이 시급한 민생 사건은 이관 순서에서 앞세워야 한다. 셋째,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이 기관 사이에서 떠도는 일이 없도록 이관 전 전수 점검이 필요하다. 셋 다 지침 하나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법을 고쳐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제245조의13 제3항에 피해자가 스스로 제출한 자료는 예외라고 못 박아야 한다.


해석과 협의로는 증거능력의 불확실성을 지울 수 없다. 개혁은 법이 통과된 날 완성되지 않는다. 고소장 한 장이 길을 잃지 않을 때 완성된다. 간판은 바뀌었다. 이제 사건을 찾을 차례다.

AD

이재홍 변호사


[영역:young域]
아시아경제는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청년 필자의 글을 기다립니다. 글은 [영역:young域]에 실려 널리 전달됩니다. 함께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담은 글을 200자 원고지 10매 안팎으로 작성해 보내주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함께 적어 column@asiae.co.kr로 제출하시면 됩니다. 원고를 검토한 뒤 게재 여부를 알려드리며, 채택된 글은 아시아경제 지면과 온라인에 게재됩니다. 소정의 원고료도 지급합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