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부임했을 때만 해도 K-푸드는 한식당을 찾아가 '사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현지인들이 마트에서 장을 봐 집에서 직접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완전히 일상에 안착한 것이죠."


지난 12일 쿠알라룸푸르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만난 여승배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는 현지 내 한류와 K-푸드의 위상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약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최근 귀국길에 오른 여 전 대사는 재임 기간 K-푸드를 단순한 문화 콘텐츠를 넘어 국가 경제와 수출의 핵심 동력으로 연결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

지난 12일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만난 여승배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임온유 기자

지난 12일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만난 여승배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임온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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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주부가 선보인 '할랄 한우'… 식당 넘어 안방 식탁으로

그가 지난 4년간 현장에서 목격한 가장 극적인 변화는 K-푸드의 소비 방식 그 자체였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외식 메뉴에 머물던 한식이 현지 무슬림 가정의 일상 식문화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여 전 대사는 지난 5월 쿠알라룸푸르 대형 쇼핑몰 '원우타마'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어' 요리 경연대회를 꼽았다.

여 전 대사는 "전문 요리사도 아닌 30대 현지 무슬림 전업주부가 K-드라마를 보며 집에서 연습한 솜씨로 '할랄 한우 육회'를 선보여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며 "한국행 항공권을 전달받고 감격해 울먹이던 그 주부의 모습을 보면서 K-푸드가 현지 무슬림의 삶 속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체감했다"고 회고했다.

지난 12일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만난 여승배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임온유 기자

지난 12일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만난 여승배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임온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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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최고 수준 구매력… 20억 무슬림 시장 잇는 '최적의 시험대'

여 전 대사는 말레이시아를 20억 무슬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최적의 전초기지(Testbed)'로 규정했다. 여 전 대사는 "말레이시아는 인구 3400만 명 중 무슬림 비중이 60%를 웃도는 데다,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아세안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나라"라며 "구매력을 갖춘 두터운 중산층과 젊은 소비층이 많아 프리미엄 과일이나 최고급 할랄 한우 같은 고부가가치 농축산물이 충분히 통하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엄격하기로 손꼽히는 말레이시아 이슬람개발부(JAKIM·자킴)의 인증을 통과한다면 아세안 3억 무슬림뿐 아니라 20억 인구의 중동(GCC) 시장까지 단번에 뻗어나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된다"며 "국내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단순한 단일 소비처가 아닌 글로벌 할랄 경제의 관문이자 도약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랄 인증 만능주의는 금물"… 모방품 차단해야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만 믿고 섣불리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냉철한 진단도 내놓았다. 할랄 인증에만 매달리다 현지 유통 생태계나 다민족 문화를 간과해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데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짝퉁 제품 역시 우리 농식품의 브랜드 가치를 위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여 전 대사는 "다수 무슬림을 공략하려면 할랄 인증은 필수지만, 인증만 받으면 저절로 다 팔릴 것이라는 환상은 금물"이라며 "현지의 독특한 유통 구조와 다민족 시장의 상관행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엉터리 한글을 표기한 저가 모방 제품이 우리 농식품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현지 통상 당국 및 대형 유통망 책임자들과 함께 위조품 단속 세미나를 여는 등 대사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외교관으로서 4년간 현장을 샅샅이 누빈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한 단계 확장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여 전 대사는 "말레이시아는 지리적으로 아세안의 중심에 위치해 주변국과의 연계성이 뛰어나고, 영어가 자유롭게 통하며 정치적으로도 매우 안정된 나라"라며 "우리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좁은 단일 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글로벌 할랄 무대로 뻗어나가는 확실한 디딤돌로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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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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