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포트, 캡슐커피 밀려 다각화 나섰다 빚더미
가족경영 한계 부딪힌 이탈리아 제조업

한국, 후계자 없는 중소기업 67만 곳
승계 M&A 세제 혜택선 사모펀드 빠져

"꾸르르륵…치익치익."


이탈리아의 아침에는 가정집마다 비슷한 소리가 난다. 모카포트 아랫칸에서 끓은 물이 증기 압력으로 커피를 밀어 올리는 소리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마키아토 등 카페 메뉴판 속 용어 상당수가 이탈리아어일 만큼 이탈리아와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그 애정을 상징하는 물건이 모카포트다. 그런데 이 모카포트를 만든 회사는 빚에 눌려 지난해 새 주인을 맞았다. 사연에는 승계와 전문경영이라는 이탈리아 제조업의 숙제가 얽혀 있는데,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한국 중소기업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


1933년 모카포트를 발명한 비알레띠(Bialetti)는 2024년 말 순부채 1억1500만유로를 안고 있었다. 매출 1년치와 맞먹는 규모다. 이 회사는 2025년 홍콩의 투자회사 누오 캐피탈(NUO Capital)에 넘어갔다. 누오 캐피탈에는 홍콩 파오 가문과 에르메스 가문 후손 등이 투자했다.

모카포트 밖에서 성장을 찾다 빚에 눌린 비알레띠…사모펀드 품으로

비알레띠의 대표상품이자 아이콘인 모카포트.

비알레띠의 대표상품이자 아이콘인 모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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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알레띠는 1919년 알루미늄 공방으로 출발해 1933년 모카포트를 내놨다. 전후 창업자의 아들 레나토가 이를 대중 상품으로 키우며 이탈리아 가정의 주방을 채웠다. 비알레띠는 모카포트였고, 모카포트는 비알레띠였다. 2007년 밀라노 증시에 상장할 무렵 이탈리아 모카포트 시장 점유율이 74%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다. 간편한 캡슐 커피가 가정용 시장을 파고들며 매출이 꺾이자 비알레띠는 모카포트 밖에서 성장을 찾았다. 조리기구와 소형가전 업체를 사들이고 튀르키예·루마니아에 공장을 확보했으며, 직영 매장을 열고 캡슐 커피에도 뛰어들었다. 빚을 내 벌인 확장이었지만 마진이 낮은 사업들은 모카포트만큼 팔리지 않았다. 부채는 쌓였고 회사는 새 주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저마진 조리기구에서는 2019년부터 손을 떼기 시작했다. 2025년 누오 캐피탈 인수 거래는 만기가 다가온 기존 부채를 갚는 데 쓰였고, 조리기구를 만들던 공장 한쪽은 커피 로스팅 시설로 바뀌었다.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한 비알레띠는 모카포트를 젊은 세대에게 다시 내놓고 있다. 은색이던 포트는 바비 핑크로 나왔고 돌체앤가바나, 넷플릭스 '브리저튼'·'기묘한 이야기'와 협업한 제품도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 늘어 1억6600만유로였고, 모카포트 약 450만 개 중 250만 개가 해외에서 팔렸다.


발명은 잘하는데 키우지는 못한다…직원 10명 미만 기업이 95%인 나라

다양한 색상으로 출시되는 모카포트

다양한 색상으로 출시되는 모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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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오 캐피탈이 선임한 주세페 모리치 회장은 비알레띠를 한 회사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이탈리아는 25년쯤마다 기발한 발명을 내놓지만 이를 세계로 가져갈 기업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자와 가구, 커피까지 이탈리아가 유명한 품목은 많아도 "세계 시장을 한 번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FT가 인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이탈리아 기업의 95% 가까이가 직원 10명 미만이고 250명 이상은 0.1%다. 소·영세기업이 고용의 62% 이상으로, 프랑스·독일(약 40%)비해 높은 편이다. 중견·대기업까지 자란 이탈리아 기업은 프랑스·독일 기업과 생산성·수출에서 대등하거나 앞서 나갈 수 있기도 하지만, 그 단계에 이르는 기업이 자체가 많지 않다.


FT가 인터뷰한 학자들은 전후 이탈리아를 유럽 2위 제조업 국가로 키운 가족기업 모델이 세계 경제가 바뀌면서 한계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보코니대 안드레아 콜리 교수에 따르면 살아남은 산업지구 기업은 대부분 해외 사업장과 외부 경영인을 두고 있다. IMD 비즈니스스쿨의 알프레도 데 마시스 교수는 "일요일 점심 식탁에서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는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고 봤다. 이탈리아의 경우 자금도 은행 대출과 가문 자산이 중심이어서 주식시장 조달 비중은 3.9%다.


다만 모리치 회장은 "가족 자산과 은행이 오랫동안 자금을 대 왔기에 자본 접근성은 근본 제약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가 꼽은 진짜 문제는 거버넌스(지배구조)다. 전문 경영 구조를 갖춘 채 가족이 지배력을 유지한 유럽 기업은 성공했다는 것이다. 독일 미엘레는 창업 두 가문이 지배권을 쥔 채 매출 50억유로 이상, 직원 2만 명 이상으로 컸고, 이탈리아의 페레로와 바릴라도 세대교체를 거쳐 글로벌 기업이 됐다.


후계자 못 찾는 한국 중소기업 67만 곳…'파는 길'은 열렸는데 큰손은 빠졌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포트가 한국에 던진 질문[주末머니] 원본보기 아이콘

비알레띠가 겪은 위기와 이탈리아 제조업이 흔들리는 지점은 한국 중소기업의 사정과 포개진다. 이탈리아에서는 가족이 경영을 쉽게 놓지 못해 회사가 작은 채 남았다면, 한국에서는 경영을 물려받을 사람부터 줄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실태조사에서 중소기업 경영자 평균 연령은 55세, 60세 이상은 33.3%였다. 제조업은 60세 이상 CEO 비중이 2012년 14.1%에서 2024년 44.8%로 높아졌다. 60세 이상 CEO가 이끄는 중소기업 약 236만 개 중 28.6%, 약 67만5000개는 후계자가 없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조업만 5만6000개를 넘고 83%가 서울 밖에 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포트가 한국에 던진 질문[주末머니] 원본보기 아이콘

정부는 지난해 12월 친족 승계 중심이던 지원을 매각, 전문경영인 영입, 임직원 승계 등 M&A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올해 세제개편안에는 '제3자 사업승계 과세특례'가 들어갔다. 매출 5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을 20년 이상 경영한 60세 이상 최대주주가 회사를 제3자에게 넘기면 양도소득세 20%를 감면받는다. 매수자는 5년간 소득세·법인세를 연 5억원 한도로 10% 감면받는다. 2028년부터 3년간 한시로 운영된다. 감면 대상 매수자는 동종 업종을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기업인이거나 해당 기업에서 5년 이상 일한 임직원이다. 다만 사모펀드는 적격 매수인 대상에서 제외됐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상황에 맞는 금융구조 설계, 추가 M&A를 통한 밸류업에 더해 신속한 의사결정 등 사모펀드는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며 "승계·기업영속성 문제가 한국 산업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인데, 사모펀드 업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유효한 옵션을 고려하지 않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포트가 한국에 던진 질문[주末머니] 원본보기 아이콘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사모펀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삼일PwC가 2021~2023년도 M&A 거래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중견·중소기업 오너 대상 거래 310건(64%)에서 사모펀드가 매수자였고 매각 때 가장 선호하는 거래 상대도 사모펀드(48%)였다. 동종업계 경쟁사는 비슷한 승계 문제로 인수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임직원은 인수에 동의해도 자금이 모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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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C삼일은 "중견·중소기업 오너들이 M&A를 고려하는 배경에는 성장과 승계, 이익실현이라는 세 가지 핵심목적이 있다"며 "사모펀드는 그 중심에서 유연하고 전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특히 중견·중소기업 오너들에게 PE와의 협업은 성장, 승계, 자산 실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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