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이라니 안심하고 사 먹을 수 있어요. 중국산이 반의반 값이라지만 농약 걱정 때문에 손이 안 가더라고요."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선웨이 피라미드' 쇼핑몰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 현장. 한국산 샤인머스캣을 시식한 30대 중국계 현지인 캐리 리 씨는 "정말 달콤하고 아삭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무슬림 현지인들이 한국 샤인머스캣을 시식하고 있다. aT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무슬림 현지인들이 한국 샤인머스캣을 시식하고 있다. aT

AD
원본보기 아이콘

◆FTA 피해 품목의 반전…딸기 잇는 '포도'의 질주=2004년 한·칠레 FTA 체결 당시만 해도 한국 포도는 개방의 파고 앞에 존폐를 걱정하던 대표적인 피해 품목이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안방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한국 포도는 해외 무대에서 비싸게 팔리는 '프리미엄 수출 품목'으로 변모했다. 고품질 재배 기술로 체질을 개선해 역으로 세계 시장을 파고든 결과다.


정부는 말레이시아 수출 1위인 딸기(연 400만 달러)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략 품목으로 포도를 낙점했다. 저가 중국산 공세에 맞서 고품질 샤인머스캣과 '글로리스타', '코코볼' 등 신품종을 앞세워 현지 프리미엄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장정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쿠알라룸푸르 지사장은 "과거 존폐를 걱정하던 한국 포도가 이제는 동남아 대형마트 과일 코너의 가장 좋은 자리를 꿰찬 최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무슬림인 파틴 하난 씨가 할랄 한우를 시식하고 있다. aT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무슬림인 파틴 하난 씨가 할랄 한우를 시식하고 있다. aT

원본보기 아이콘

◆7년 만에 뚫은 '자킴 인증'…초프리미엄 노리는 할랄 한우=행사장은 주말 오전부터 K-푸드를 맛보려는 현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포도 부스 바로 옆에서는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름조차 생소한 '할랄 한우' 부스다. 강원도 횡성에서 자라 말레이시아 이슬람개발부(JAKIM·자킴)의 엄격한 인증을 거쳐 건너온 귀한 고기다.


갓 구워낸 한우를 맛본 30대 무슬림 파틴 하난 씨는 "한국식 BBQ는 먹어봤지만 한우는 처음인데, 육즙이 풍부하고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며 감탄했다. 그는 "보통 K-푸드 하면 돼지고기 삼겹살을 먼저 떠올려 할랄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한국산 할랄 한우를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두 딸, 남편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하난 씨는 현지 무슬림도 선호하는 한식 프랜차이즈 '오이소'의 전 메뉴를 섭렵할 정도의 열혈 한식 팬이다. 다만 그는 "한우 맛은 훌륭하지만, 가격대가 높아 가정에서 선뜻 자주 사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이날 선보인 할랄 한우 채끝살의 판매가격은 100g당 122.75링깃으로, 현지 소고기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호주산(59.60링깃)의 두 배에 달한다. 시장 2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산 고급 와규와 비슷한 수준이다.


'할랄 한우' 한 점이 말레이시아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바늘구멍 뚫기'에 가까웠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엄격함을 자랑하는 자킴 인증은 단순 위생·검역을 넘어선다. 비이슬람 국가인 한국에서 공인 무슬림 도축사가 이슬람 율법에 따라 기도와 의식을 거쳐 혈액을 완전히 배출해야 한다. 여기에 돼지고기 등 타 육류와의 교차 오염을 100% 차단하기 위해 도축부터 운송까지 전 과정을 완전히 분리·운영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7년여의 끈질긴 협상 끝에 말레이시아와 2023년 검역 협상을 타결했음에도 할랄 도축장이 '한다운FSL' 단 한 곳에 불과한 이유다.


어렵게 문을 열었지만 시장 개척은 이제 첫걸음이다. 장 지사장은 "한우는 아직 물류 여건상 냉동육 위주로 유통되고 있어 오랜 기간 터를 닦은 호주산, 일본산 와규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현지 고급 유통 매장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초프리미엄' 브랜딩을 구축해 고급 미식 시장의 마중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장정호 aT 쿠알라룸푸르 지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aT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장정호 aT 쿠알라룸푸르 지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aT

원본보기 아이콘

◆20억 무슬림 시장의 교두보…"할랄 인증 확대돼야"=정부는 말레이시아를 글로벌 할랄 시장 공략의 핵심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70.3%), 중국계(22.4%), 인도계(6.5%)의 다민족 국가이자 국민의 62% 이상이 무슬림이다. 브루나이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GDP(약 1만5000달러)를 기록해 소비력도 탄탄하다. 특히 전 세계 할랄의 표준으로 통하는 말레이시아 자킴 인증을 확보하면 아세안 3억 무슬림은 물론 20억 인구의 중동(GCC) 시장 진출로 직결된다.


이날 행사에서는 할랄 한우와 할랄 인증 간장을 활용한 '소고기국 쿠킹클래스'가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아세안 권역 K-푸드 명예 홍보대사이자 틱톡 팔로워 190만 명을 보유한 현지 인기 인플루언서 부부 '두리안 김치(한국인 아내 마리얌, 말레이시아인 남편 리잘)'가 시연을 맡았다. 아기용 순두부찌개, 잡채 등 한국식 유아 밥상 콘텐츠로 현지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이다.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인플루언서 부부 '두리안 김치'가 한식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aT

지난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서 열린 'K-할랄 푸드 페스티벌'에서 인플루언서 부부 '두리안 김치'가 한식 쿠킹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aT

원본보기 아이콘

마리얌 씨는 "K-드라마 열풍으로 방송에 나오는 모든 한국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싶어 하는 현지인들의 욕구가 턱끝까지 차오른 상태"라며 "할랄 인증만 붙어 있다면 당장에라도 지갑을 열 현지 소비자가 수두룩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한우와 신선 과일뿐 아니라 고추장·된장·간장처럼 발효 과정의 주정(알코올) 성분 때문에 인증이 까다로운 전통 장류와 소스류의 할랄 인증이 더 확대돼야 한다"며 "한국 고유의 양념이 현지에 자유롭게 유통될 때 비로소 진정한 'K-집밥' 문화가 무슬림 가정 식탁 깊숙이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D

제작 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