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전 사업장 의무화
전문법인 일임 '기금형' 신설
'자동 연금지급'으로 노후 보장
정부가 발표한 퇴직연금 개편안은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20여 년 만의 구조 개편이다. 체불 방지에 머물던 퇴직급여 제도를 전문 운용을 통한 수익률 제고와 노후소득 보장까지 아우르는 체계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계약형 사업장, 기금형 전환·계약형 회귀 가능"
핵심은 전문 수탁법인이 여러 가입자의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다. 금융기관과 노사 단체, 공공기관 등이 운용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 가입자는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 중 선택할 수 있다. 개별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는 부담을 줄이고, 자금을 모아 분산 투자하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운용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기금형 도입이 수익률 개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운용 성과와 수수료, 수탁법인의 책임·감독 체계가 제도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정부는 수탁법인의 손해배상 입증책임을 강화하고 적립금의 0.25%를 운영위험준비금으로 쌓도록 해 가입자 보호 장치도 마련했다. 남성욱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장은 "기존 계약형(DC) 도입 사업장도 노사 합의를 거쳐 규약에 반영하면 기금형으로 전환하거나 다시 계약형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외적립 의무화는 퇴직금 체불을 줄이기 위한 안전판이다. 지난해 전체 임금체불액 중 퇴직금은 41.1%(8230억원)를 차지했다. 기업이 퇴직금을 장부상 부채로만 쌓아두면 도산이나 폐업 때 근로자가 퇴직급여를 받지 못할 위험이 컸다. 사외적립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되면 퇴직급여 재원이 금융기관 등에 적립돼 기업의 경영 악화와 별개로 보호받을 수 있다. 다만 의무화는 각 단계 시행일 이후의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돼 기존 근속기간까지 일괄 소급되는 것은 아니다.
'500조 퇴직연금' 자본시장으로…수익률 제고 시험대
자본시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운용 수익률은 지난해 6.47%로 반등했지만, 국민연금 수익률 18.82%에는 크게 못 미쳤다. 기금형 도입으로 전문 운용과 분산 투자가 활성화되고, IRP 위험자산 투자 한도 완화와 종합투자계좌(IMA)·발행어음 편입 허용까지 이뤄지면 퇴직연금 자금의 투자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이나 영국의 네스트(NEST)처럼 장기 자금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체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투자 대상 확대가 손실 위험을 높일 수 있는 만큼, 수익률뿐 아니라 위험 관리와 수수료 부담도 함께 따져야 한다.
영세 사업장 유동성 부담…연착륙 지원이 관건
반면 영세 사업장에는 퇴직급여를 외부에 적립해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10.6%에 그친다. 현금 여력이 부족한 기업은 매달 또는 매년 퇴직급여 재원을 외부에 적립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의무화 전 조기 도입 사업장에 적립금 매칭 지원과 대출 이차보전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의무화가 2030년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는 만큼 지원 규모와 기간, 현장 수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신진영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부담 능력을 이유로 영세기업에 예외를 두면 퇴직금 보장이 가장 절실한 취약계층이 오히려 배제된다"며 "제도는 전면 적용하되 영세 사업장의 충격을 줄일 재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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