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식욕 저하와 근육·지방 손실을 줄일 치료제 후보가 개발됐다. 식욕과 체중이 줄고, 에너지 소비를 과도하게 늘리는 신호를 차단해 '암 악액질'을 완화하는 역할이 핵심이다. 암 악액질은 암 환자가 음식을 섭취해도 체중이 감소하고, 근육과 지방이 소실되는 증상이다.
KAIST는 생명과학과 김호민 교수 연구팀이 의과학대학원 송민호 교수 연구팀과 암 악액질을 완화할 항체 후보물질 'GB2Ab'를 개발했다고 29일 밝혔다.
후보물질은 치료제로 쓰이기 이전에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의 물질을 말한다. 항체는 특정 물질에 달라붙는 성질의 단백질이다. 연구팀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GB2Ab로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신호를 차단했다. 치료 효과는 생쥐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암 악액질은 단지 입맛이 없거나, 음식을 적게 먹어 체중이 줄어드는 것과는 구별된다. 몸이 영양분을 이용하고,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근육과 지방이 감소하는 일종의 합병증이다. 영양 공급만으로는 충분히 회복하기 어려워 환자의 일상생활과 항암치료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GDF15'는 암 악액질에 관여하는 물질 중 하나(단백질)다. 암이나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혈액 속 GDF15가 늘어 뇌의 아래쪽에 위치한 뇌간의 'GFRAL' 수용체와 결합하면 식욕을 떨어뜨리고,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데 영향을 주는 신호가 전달된다.
수용체는 특정 물질과 결합해 신호를 받아들이는 단백질이다. GDF15가 신호를 보내면 GFRAL가 이를 받아들여 몸의 변화를 일으키는 '수신기' 역할을 한다.
공동연구팀은 GFRAL를 항체로 막는 방법에 주목했다. 혈액 안에 GDF15를 직접 붙잡지 않고, 신호를 받아들이는 GFRAL 수용체를 차단하는 게 핵심이다.
항체 GB2Ab는 이런 원리로 개발됐다. 수용체에 강하게 달라붙어 식욕 저하와 과도한 에너지 소모에 관여하는 신호 전달을 억제하도록 한 것이다.
공동연구팀은 항체와 수용체가 결합했을 때의 입체 구조도 분석했다. 이를 통해 항체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 항체를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상단 왼쪽부터) KAIST 생명과학과 김호민 교수·김소현 박사·안진숙 박사, (하단 왼쪽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 송민호 교수·토르 테라퓨틱스 이민희 박사·이노코어(InnoCORE) AI-CRED 혁신 신약 연구단 주상현 박사. KAIST
원본보기 아이콘효과는 동물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실험용 쥐에 대장암 세포를 이식해 암 악액질을 유도한 후 항체를 투여했을 때 음식 섭취량이 회복됐다. 또 종양 무게를 뺀 체중이 항체를 투여하지 않은 실험용 쥐보다 20%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육과 지방 손실도 줄었다.
악력이 개선된 효과도 보였다. 항체를 투여한 생쥐의 악력은 투여하지 않은 생쥐보다 악력이 30%가량 높아져 정상 생쥐의 90% 수준에 도달했다. 체중뿐 아니라 실제 힘을 내는 능력에서도 개선 효과가 확인된 셈이다.
특히 항체를 투여한 실험용 쥐는 '교감신경'의 과도한 활동이 줄었다. 교감신경은 몸의 긴장 반응과 에너지 사용 등을 조절한다. 과도한 활동이 줄었다는 것은 먹는 양을 늘리는 것에 더해 몸이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하는 과정이 완화된 것을 의미한다.
다만 항체 GB2Ab를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하려면 추가 시험과 사람 대상의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 및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공동연구팀은 설명했다.
항체 GB2Ab는 종양 자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암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것을 완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암 악액질에 관여하는 신호를 차단할 항체를 개발하고, 작동 원리와 효과를 실험용 쥐를 통해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공동연구팀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식욕 회복뿐 아니라 근육과 지방의 손실을 줄이고, 신체 기능을 지켜 암 환자가 치료를 이어갈 힘을 보존할 수 있게 돕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 결과는 전날(28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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