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는 어떻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됐나…홍진훤, 올해의 작가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SBS문화재단, '올해의 작가상 2026' 최종 선정
외신기자 출신…사진·영상 통해 이미지와 권력의 관계 탐구
혁명 구호와 오늘날 집회 교차…비극의 현장·기억 다룬 신작 주목
테이트 모던·KW 현대미술관 등 국제 심사위원 호평
거리의 집회는 저항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카메라를 향해 연출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구호와 몸짓은 영상으로 기록되고, 그 이미지는 유통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과 영상이 오히려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면 어떨까. 이미지에 내재한 권력관계를 탐구해 온 홍진훤 작가(46)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6'의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6' 최종 수상자로 선정된 홍진훤 작가. 홍 작가는 사진과 영상, 웹 프로그래밍 등을 활용해 집회와 투쟁의 현장이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과정과 그 안에 내재한 사회·정치적 권력관계를 탐구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은 28일 홍진훤을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홍진훤은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과 함께 올해 후원작가 4인에 선정돼 지난 7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신작을 선보여 왔다. 국내외 심사위원들의 공개 대화와 27일 관람객 참여형 좌담회, 최종 비공개 심사를 거쳐 수상자로 결정됐다.
1980년생인 홍진훤은 외신기자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과 영상, 웹 프로그래밍 등을 활용해 이미지가 사회적 사건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탐구해 왔다. 집회와 투쟁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그의 관심은 기록된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며 어떤 권력관계를 드러내는지로 확장됐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2026)는 1971년 일본 적군파와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의 선언인 '프로파간다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작가는 과거 혁명운동의 급진적 언어를 오늘날 한국의 집회 풍경에 겹쳐 놓았다.
32분50초 분량의 영상에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발레 영상과 집회 기획자 인터뷰, 새롭게 해석한 민중가요와 몸짓 등이 교차한다. 홍진훤은 과거 체제 전복을 꿈꿨던 혁명의 언어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질문한다. 동시에 집회가 무대와 연출, 카메라를 위한 구호를 통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또 다른 신작 '사실 은하수는 유령입니다'(2026)는 비극이 지나간 장소의 풍경을 다룬다. 작가가 촬영해 온 정치적 풍경 사진에 네덜란드 천문학자이자 사회주의 사상가인 안톤 판네쿡의 천문학 연구 이미지를 결합했다.
판네쿡은 은하수를 개별 별들의 집합뿐 아니라 이를 관측하는 시선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했다. 홍진훤은 이러한 관점을 비극 이후의 풍경에 적용한다. 사건이 지나간 장소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억과 인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건의 흔적을 사진이 어떻게 간직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 묻는 작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6' 최종 수상자로 선정된 홍진훤 작가의 영상 작품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2026) 전시 전경. 과거 혁명운동의 구호와 오늘날 집회 풍경을 교차시키며 저항과 투쟁의 현장이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홍철기
원본보기 아이콘국제 심사위원들은 홍진훤이 이미지를 사회적 사건의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현실의 의미를 구성하는 매개로 다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영국 테이트 모던의 샤메인 도 학예실장 직무대리는 "홍진훤의 작업은 사회적 실천과 그것이 이미지로 재현되는 과정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 체계에 질문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독일 베를린 KW 인스티튜트 포 컨템포러리 아트의 엠마 엔더비 디렉터는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의 이미지 및 기록을 교차시키는 방식이 인상적"이라며 이미지가 사건을 전달하는 동시에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밝혔다.
홍진훤은 2009년 제11회 사진비평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임시풍경'(2013), '붉은, 초록'(2014), '마지막 밤(들)'(2015), '쓰기금지모드'(2016), '랜덤 포레스트'(2018), '멜팅 아이스크림'(2021)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2021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2024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장영혜중공업과 함께 '타이틀 매치: 중간 지대는 없다'를 선보였다. 2022년에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름다운 기러기상과 부산평화영화제 평화상 등을 받았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공동 운영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다. 매년 후원작가 4인을 선정해 신작 제작과 전시를 지원한 뒤 최종 수상자를 가린다. 후원작가에게는 각각 5000만원의 창작후원금이 지급되며, 최종 수상자는 1000만원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윤태욱 국립현대미술관장 직무대리는 "홍진훤은 이미지가 현실을 기록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사건의 의미와 기억을 구성하는 조건임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시각 체계와 권력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홍진훤과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올해의 작가상 2026' 전시는 12월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2전시실에서 이어진다. 회화와 사진, 영상, 조각 등 작품 100여점과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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