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유산연구원·앙카라대 공동 연구 성과
같은 구역서 문화층 네 개도 발견
일반 주거군보다 거대한 구조물 확인
"실제 도시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편년 수립 뒤 더 깊은 층으로

튀르키예 퀼테페 유적 전경/국가유산청.

튀르키예 퀼테페 유적 전경/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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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상업 중심지로 알려진 튀르키예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 시대 도시의 실체를 가늠할 단서가 나왔다. 이전까지 연구가 청동기시대에 집중돼 그 뒤 시기의 도시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튀르키예 앙카라대 공동 연구진은 1948년 발굴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이 빈틈을 메울 모자이크 유구를 확인했다. 같은 구역에서 문화층 네 개도 발견했다. 조사 성과는 27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공개됐다.


점토판 도시 퀼테페의 모자이크


퀼테페는 튀르키예 중부 카이세리에서 북동쪽으로 20㎞ 떨어진 고대 도시 유적이다. 이름은 화재와 지진, 홍수를 겪고 다시 정착하기를 되풀이하며 층이 쌓인 언덕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로마시대까지 정착지로 쓰였는데, 히타이트 제국 이전에는 카네시(네샤) 왕국의 수도였다. 언덕 위 상부도시에는 왕궁과 신전이, 아래 하부도시에는 상인이 머물며 교역하던 구역인 '카룸'이 있었다.

모자이크 건물지 조사 후 모습/국가유산청.

모자이크 건물지 조사 후 모습/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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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테페를 세계에 알린 건 상인들의 기록이다. 기원전 2000~1650년 장거리 교역을 벌인 아시리아인들이 설형문자 점토판 2만3500여 점을 남겼다. 이 기록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튀르키예가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위해 유네스코에 제출한 문서는 이를 아나톨리아 최초의 문자 기록이자 고대 근동 최대 규모의 사문서로 소개한다. 피크리 쿨라코울루 앙카라대 교수는 "퀼테페는 세계에서 오래된 국제적이고 체계적인 장거리 교역망 가운데 하나"라며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이곳에서 처음 읽고 쓰기를 배웠다"고 설명했다.


쿨라코울루 교수는 현재 이 유적의 발굴단을 이끈다. 지난해 한국 연구진과 공동 발굴을 시작했고, 올해 2차 발굴에서 건물지로 추정되는 모자이크 유구를 찾아냈다. 발견된 지역은 상부도시 중심 궁전인 와르샤마 궁전의 동쪽이다. 모자이크 유구는 모서리 부분이 확인됐으며, 규모는 동서 163㎝, 남북 165㎝다. 주변에서 관련 흔적이 나와 원래 더 넓었다고 여겨진다. 바닥은 깨진 돌과 고운 흙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작은 강자갈(하천에서 채취한 자갈)을 깐 구조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기 조각과 석회도 사용됐다.

바닥에 강자갈을 쓰는 방식은 소아시아에서 기원전 8~7세기부터 이어진 조약돌 모자이크와 맞닿아 있다. 이 기법은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 올린토스에서 신화 속 장면을 그릴 만큼 정교해졌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돌을 잘라 붙이는 방식이 퍼지면서 쓰임이 줄었다. 퀼테페 유구가 이 계통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퀼테페 유적 헬레니즘시대 문화층/국가유산청.

퀼테페 유적 헬레니즘시대 문화층/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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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가 나온 구역에선 기원전 323~30년에 걸친 헬레니즘시대 문화층 네 개도 확인됐다. 건물지, 바닥, 벽체, 석렬(돌을 줄지어 놓은 흔적), 수로, 출입시설 같은 생활 흔적이 서로 겹쳐서 나타났다. 쿨라코울루 교수는 "특정 시점의 단일 건물이 아니라 같은 공간이 일정 기간 반복해 고쳐 쓰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연구진이 찾아낸 단서


헬레니즘시대 퀼테페에 협의회 같은 큰 건축물과 부유한 사람들의 저택이 있었다는 사실은 문헌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 층위나 도시 정착지 측면에서 발굴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범위마저 좁은 구역으로 한정돼 도시 전체의 통일성을 보여줄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번 발굴로 단순히 대형 거주지나 사원이 아니라 실제 도시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쿨라코울루 교수는 "그동안 찾지 못했던 중요한 건축물과 도시화 양상을 확보했다"면서 "비록 한 구역이지만 일반적인 주거군보다 훨씬 거대한 구조물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우무트 괴르귈뤼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발굴·조사과장, 뷜렌트 괴뉠타쉬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부총국장, 피크리 쿨라코울루 앙카라대 교수/국가유산청.

왼쪽부터 우무트 괴르귈뤼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발굴·조사과장, 뷜렌트 괴뉠타쉬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부총국장, 피크리 쿨라코울루 앙카라대 교수/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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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테페는 청동기 이전의 금석병용기부터 셀주크·오스만 시대까지 교역로가 만나는 상업 중심지였다. 쿨라코울루 교수는 "헬레니즘시대에 아테네, 에게해의 타소스, 키프로스를 잇는 상업망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퀼테페에서 남서쪽으로 20㎞가량 떨어진 오늘날 카이세리 일대에는 기원전 3세기 후반 카파도키아 왕국의 중심이 된 도시 마자카도 있었다.


상업 중심지로서의 변천은 이번에 찾아낸 문화층 네 개에서 확인된다. 쿨라코울루 교수는 "지층은 헬레니즘시대에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며 "어떻게 형성돼 변화하다 끝을 맺었는지까지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퀼테페 유적 발굴조사 모습/국가유산청.

퀼테페 유적 발굴조사 모습/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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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과는 한국과 튀르키예의 공동 연구에서 나왔다. 양국은 2024년 양해각서와 공동학술협력 약정서를 맺고 협력의 틀을 마련했다. 한국 연구진은 지난해 5월 지하물리탐사와 3차원(3D) 항공측량으로 유구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했다. 현재 2차 발굴을 마치고 주요 유물을 3D 정밀 스캐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뷜렌트 괴뉠타쉬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부총국장은 "한국 연구진의 기술·실험·분석 경험으로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쿨라코울루 교수도 "한국의 분야별 전문가들 덕분에 퀼테페의 도시화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순탄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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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건물지 발굴조사 모습/국가유산청.

모자이크 건물지 발굴조사 모습/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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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는 아직 초기 단계다. 발굴된 곳이 유적 전체 면적의 3~4%이고, 확인된 모자이크 바닥도 가로세로 1.6m 남짓에 그친다. 문화층 네 개도 마찬가지다. 분석을 통해 각 층의 유물과 연대를 정리해야 한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이 결과를 종합해 퀼테페의 헬레니즘시대 편년을 세우고, 문화층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박윤정 고고연구실장은 "건물의 규모와 성격을 추가 연구로 규명해야 한다"며 "헬레니즘시대 문화층 조사를 마친 뒤 카네시 왕국과 히타이트시대 유구가 남은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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