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재제청 해부]③출구 꽉 막힌 사법 대치…'후추위 개편·제청권 손질'이 근본 해법
당장은 국회 임명동의 요청, 길게는 후추위 개편 거론
대통령엔 선례 부담, 후추위는 대법원장 영향력 논란
대법관 재제청을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강대강 대치는 법적 수단만으로는 풀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은 청구 주체가 불명확하고 인용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범여권이 꺼내든 대법원장 탄핵 및 국정조사 카드는 소추 사유의 중대성, 명분부터 논란이다. 당장의 갈등을 봉합할 정치적 타협마저 여의찮은 상황에서 결국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 개편과 헌법상 제청권 재설계 등 인선 시스템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같은 극한 대치를 풀 단기 출구로 이재명 대통령이 재제청 요구를 철회하고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울 소재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국회 인준 절차로 넘겨 판단을 받는 것이 순리"라고 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재제청 요구를 대통령의 권한 남용으로 규정하며 "결자해지의 열쇠를 쥔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보내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지금 동의안을 제출하면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는 무조건 국회 임명동의를 요청해야 한다'는 헌정 선례가 남기 때문이다. 정태호 경희대 법전원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동의안을 제출한 뒤 다수당인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부결시키는 절충안도 거론되지만, 유인은 크지 않다"고 했다.
◆대법관 후추위 다원화가 핵심= 정치적 타협이 작동하지 않는 만큼,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대법관 인선의 첫 관문인 후추위부터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후추위 구성을 다원화해 추천 결과의 공신력을 높이면 대통령과 대법원장 어느 쪽도 이를 자의적으로 흔들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41조의2에 따르면 후추위는 제청 때마다 총 10명으로 꾸려진다. ▲선임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당연직 6명에, 대법원장이 지명·위촉하는 ▲일반 법관 1명 ▲비법조인 외부 인사 3명이 합류한다. 위원장 역시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후추위가 3배수 이상의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대법원장에게 법적 구속력은 없다.
가장 큰 문제로는 '대법원장 편중 구조'가 꼽힌다. 위원 10명 중 과반이 대법원장의 직·간접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최용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원은 "법관 위원 3명과 대법원장이 위촉하는 비법조인 위원 3명 등 총 6명이 대법원장의 의중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명예교수도 위원 10명 중 최소 5명을 '대법원장의 사람'으로 규정하며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후보 추천에 관여하는 것부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는 대법원장의 입김을 빼고 추천의 구속력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된다. 최 위원은 법원행정처장을 당연직에서 제외하는 대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천하는 법관을 포함하고, 위원장도 위원 간 호선으로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후추위 추천 후보 중에서 제청하도록 의무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법원 내부에서는 "정치권이나 외부 몫의 위원을 과도하게 늘리면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형해화(내용 없이 겉모습만 남은 상태)돼 사법부 독립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권력구도 넘어선 개헌·인선 규칙 필요= 하위 법률인 법원조직법 개정만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행 헌법이 대법관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이상, 법률로 대법원장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약하면 위헌 시비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정 명예교수는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함께 위원을 추천하고 법적 구속력까지 갖춘 기구를 만들려면 개헌이 전제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장기 과제로 개헌을 통한 권력 배분 재설계를 거론한다. 한상훈 연세대 법전원 교수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폐지하되, 대통령 1인이 임기 중 대법관의 80% 이상을 물갈이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법관 임기를 연임을 통해 15년 안팎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 명예교수는 제청권을 없애 인선 주도권을 대통령에게 넘기는 대신 국회 임명동의 정족수를 현행 '출석 과반'에서 '5분의 3 이상'으로 상향해 여야 합의 없이는 임명할 수 없도록 강제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차진아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법관의 전문성과 도덕성은 대법원장이 가장 정확히 검증할 수 있다"며 제청권 유지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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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인선 규범'을 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상훈 교수는 "현재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누구인지라는 눈앞의 구도에 매몰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도 "어느 진영이든 야당이 됐을 때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며 "이번 대치의 승패보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작동할 헌법적 관행과 규칙을 세우는 일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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