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개혁 실패…비용 부담 갈등만 반복
처참한 교육환경…생계비 부담 한계
불타는 파리…유럽의 위기로 번지나

ECB 개입 각국 임시 재정 조정
'어설픈 봉합' 이어질 수 있으나
장기적 '재정 안전판' 마련해야
결국 '정치적 타협'만이 해결책

[김동기의 뷰포인트]정부의 사명, 거리의 항명, 국가의 운명
AD
원본보기 아이콘

프랑스가 흔들리고 있다. 거리에서는 정부의 긴축 정책과 악화된 공공서비스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금융시장에서는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로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정치권은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위가 정부의 재정 건전화를 가로막고, 재정 악화가 공공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 다시 시위를 부르는 악순환이다. 이 위기는 단순한 프랑스 국내 문제가 아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핵심국인 프랑스가 재정 위기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유럽 통화 통합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이번 시위의 표면적 발단은 교육 환경의 악화와 생계비 부담이다. 교사 부족과 노후한 학교 시설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을 계기로 노동조합과 노란 조끼 운동 세력이 가세하며 대규모 저항으로 번졌다. 그러나 분노의 밑바닥에는 더 깊은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교육과 노동이 안정된 미래를 보장한다는 약속이 흔들리고, 청년층은 부모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기 어렵다고 느낀다. 정부가 복지 지출을 줄이거나 공공서비스를 축소할 때마다 시민들은 위기의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한다고 받아들인다. 정책 불만이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된 이유다.

문제는 프랑스 정부가 이런 요구에 응할 재정적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19%인 3조6000억유로 수준이고, 재정 적자는 GDP의 5%를 웃돈다. 프랑스는 1974년 이후 장기간 적자에 의존해 왔다. 여기에 금리 상승으로 과거의 저금리 국채를 더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지난 22일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가 장중 5.14%까지 올랐고, 독일 국채와의 금리 격차도 15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됐다. 정부가 빚을 갚는 데 더 많은 돈을 쓸수록 교육·국방·사회정책에 투입할 재원은 줄어든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그렇다고 긴축을 강행하기도 쉽지 않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수급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높이고 재정 지출을 줄이려 했지만 노동계와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2024년 조기 총선 이후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는 예산안과 구조개혁을 둘러싸고 정치적 교착에 빠졌다. 지출 감축은 공공서비스의 추가 악화와 사회적 저항을 부르고, 지출 확대는 적자와 차입 비용을 키운다. 증세 역시 부담스럽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프랑스 정치권은 그러한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딜레마는 유로화 체제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유로존에 가입한 프랑스는 독자적 통화정책과 환율 조정 수단을 포기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 전체의 물가와 금융 상황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독자 통화 보유국이라면 환율 절하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지만 프랑스에는 그런 선택지가 없다. 대신 임금과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노동비용을 낮추는 '내부 절하'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에 복지 축소 등 재정 긴축까지 겹치면 가계와 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욱 커진다. 통화 통합의 이점이 위기 상황에서는 정책 자율성의 제약으로 바뀌는 셈이다.


ECB의 지원도 만능 해법이 될 수 없다. 프랑스 국채 매입 등 조치는 금리 급등을 막고 불안 확산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건 없는 지원은 재정 규율을 지키지 않아도 결국 유럽이 구제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을 수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회원국은 프랑스 부채를 떠안는 상황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ECB가 개입을 자제하다가 프랑스 국채시장이 급격히 불안해지면 국채를 보유한 은행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금융시장 전반으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 ECB는 재정 규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야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유로존 탈퇴는 프랑스가 통화 주권을 되찾는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막대하다. 유로화로 표시된 예금과 부채를 새 통화로 어떻게 전환할지, 전환 이후 자산과 부채의 가치가 달라질 때 누가 손실을 부담할지를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자산을 해외로 옮기려 할 경우 자본 통제가 거론될 수 있으며,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 유로 탈퇴 논의 자체가 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도 있다.


유럽의 선택지도 넓지 않다. 당장은 ECB의 제한적 개입과 각국의 임시 재정 조정으로 위기를 넘기는 '어설픈 봉합'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유로존이 안정되려면 재정적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드라기 보고서'가 제기한 에너지·국방·디지털 분야의 대규모 투자 과제도 공동 재원 조달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공동 채권 발행과 재정 통합은 국가별 자금 조달 능력의 차이를 완화할 수 있지만, 독일 등 채권국이 공동 부담에 동의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반대로 각국의 재정 책임만 강조하면서 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못하면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갈등을 반복할 것이다.


결국 정치적 타협에 달렸다. 프랑스는 단순한 지출 삭감에 머물지 않고 생산성과 공공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개혁의 부담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복원해야 한다. EU 역시 회원국에 재정 규율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금융 위기에 대응할 재정 구조를 논의해야 한다. 프랑스의 위기가 유로존 해체로 직결된다고 볼 근거는 아직 약하지만, 지금의 교착이 장기화할 경우 임시방편으로 버티는 비용은 점점 커질 것이다. 프랑스의 거리에서 터져 나온 분노는 유럽이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유럽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더라도 더 깊은 불확실성에 놓이게 될 것이다.

AD

김동기 변호사·작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