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수출은 사상 첫 1조달러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를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전망했다. 2분기 흑자는 독일과 일본의 합계를 넘어섰다. 메모리 가격 급등과 반도체 호황이 만든 성과다. 벌써 호황 이후를 대비해 서비스 수출 등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고 미국 등 선진국의 무역장벽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많이 논의되지는 않지만 수출 현장에서 수년째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해외 바이어가 USDC·USDT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내년 1월 미국 지니어스법이 시행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연방정부의 감독 체계 안에서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유통되는 것이다. 한국의 입법 일정에 맞춰 해외 바이어가 기다려줄 리 없다. 결제 요구를 거절하면 주문이 해외 경쟁업체로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받고 나면 원화로 바꿔 회사 계좌에 넣을 합법적인 경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2월 비영리법인을 시작으로 법인의 디지털자산 거래소 계좌 개설을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로 예고되었던 상장법인의 거래소 계좌 개설은 아직 소식이 없다. 한국 기업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수출대금을 받고 원화로 환전할 방법이 막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는 수출대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받은 업체 대표와 직원들이 특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을 현금화하기 위해 텔레그램 등을 통해 환전업자를 찾아 이를 원화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를 사업자 신고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코인을 판매한 행위로 보았다. 물론 개별 사건의 적법성은 따져볼 문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가 답할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수출기업은 어디에서, 어떤 절차로 돈을 받으라는 것인가.
해외에서는 이미 답이 서비스로 나와 있다. 쇼피파이와 스트라이프는 지난해 6월 34개국 판매자를 대상으로 USDC 결제 도입을 발표했다. 고객이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해도 판매자는 현지 통화로 은행 계좌에 정산받는다. 이미 새로운 혁신을 사업화하고 전 세계 판매자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기회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국내 대기업도 해외에서 길을 찾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갤럭시 이용자를 위한 USDC 송금 기능을 이달 말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와 현대카드는 미국·멕시코 법인 간 2만달러를 USDT로 보내는 실증을 마쳤다. 테더와 아발란체 등이 참여했고, 현대카드에 따르면 송금과 검증에 평균 7분이 걸렸다. 글로벌 대기업은 여러 실험을 할 여력이 있다. 그런데 하루하루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를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2024년 말부터 이미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해외 보따리상이 테더로 결제하는 사례들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주요 시중 은행 등 금융권은 수년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해외송금 기술검증을 거듭했다. 성공한 실험은 쌓였는데 여전히 기업은 수출대금을 적법하게 받을 길을 묻는다.
물론 정부도 여러 고민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상자산과 법인계좌는 금융위원회, 외환거래는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세무와 영세율은 국세청 소관이다. 복잡한 이슈에 대해 부처 간 조율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 부처가 신중한 검토를 거듭하는 사이 산업 현장의 수출역군들은 범법자가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지난해 국회 통과를 약속했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아직 정부안조차 국회에 제출되지 못했다. 여러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빨라야 2028년 시행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1년여의 법적 공백기 동안 수출기업들의 애타는 목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범부처 공동 샌드박스로 실제 수출대금이 흐르게 해야 한다. 참여 기업과 거래 한도를 정하고, 수출 증빙이 확인된 거래부터 법인 명의 수취·환전·은행 입금에 필요한 특례와 신고 절차를 함께 확정해야 한다. 은행과 적격 사업자가 거래를 처리하고 당국은 자금세탁과 제재 위반을 점검해야 한다. 외환 신고, 회계 처리, 거래 유형별 영세율 증빙까지 한 거래 안에서 검증해야 한다. 현장에서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제도 안으로 안정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70년대, 80년대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수출산업이 태동할 때 정부와 금융은 자금과 보증으로 기업이 갈 길을 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정부와 금융은 다음 50년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정부는 혁신을 지원하고 모두의 창업을 장려하겠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수출 현장의 중소기업들은 훨씬 현실적인 질문을 절박하게 묻고 있다. 합법적으로 수출대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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