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연 "가격 충격 국내 확산 늦춰…가계·기업 대응 시간 확보"
장기화 땐 공급·재정 부담…선별지원·단계적 정상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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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의 국내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일정 부분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8~9월 한국의 휘발유 가격 상승률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미국과 독일 등은 상승 폭이 크게 확대됐다. 다만 가격 통제가 장기화하면 정유사의 공급 유인이 약해지고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선별지원과 단계적인 가격 정상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7일 산업연구원(KIET)이 발표한 '석유 최고가격제의 효과와 정책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8월 직접적인 가격관리 정책을 시행한 한국·중국·태국의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평균 15.0% 상승했다. 공급 확대나 감세 등으로 대응한 미국·독일의 평균 상승률은 24.9%로, 두 그룹 간 격차는 9.9%포인트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가격 상승세가 추가로 확대되는 흐름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의 휘발유 소매가격 상승률은 8월 11.8%에서 9월 11.9%로 0.1%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은 29.5%에서 37.6%로 8.1%포인트, 독일은 27.7%에서 37.1%로 9.4%포인트 상승했다. 태국도 14.1%에서 20.7%로 상승 폭이 6.6%포인트 확대됐다.


산업연은 이를 최고가격제가 국제 에너지 가격 충격을 국내 가격에 전달하는 속도를 늦춘 결과로 해석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연료비와 물류비를 거쳐 제품·서비스 가격으로 전가되고 결국 가계 구매력과 기업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가격 상한을 통해 비용 전가 속도를 늦추면 가계는 지출을 조정할 시간을, 기업은 자금 조달이나 계약 조건을 변경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대인플레이션과 불필요한 선구매·재고 축적을 줄이고 정부와 기업이 대체 공급선이나 운송 경로를 확보할 시간도 벌 수 있다. 다만 공급자의 생산·수입 유인과 자금조달 여력이 뒷받침돼야 이 같은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고 산업연은 지적했다.


한국은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해 주유소의 소비자 판매가격이 아닌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주요국의 대응 방식은 제각각이다. 중국은 기존 관리가격 체계에서 가격 인상 폭을 제한했고 태국은 기금 지원과 가격 개입을 병행했다. 일본은 정유사·수입업자에 보조금을 지급해 소비자가격을 낮췄다.

韓 휘발유 상승률 0.1%P 뛸 때 美 8.1%P↑…최고가격제 '완충 효과' 원본보기 아이콘

반면 미국은 비축유 방출 등 공급 확대에 무게를 뒀고 독일은 한시적인 유류세 인하와 가격조정 규칙을 활용했다. 싱가포르는 현금·바우처 등을 통해 가계와 기업의 실질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의 경우 3~8월 휘발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평균 -4.5%로 집계돼 보조금 방식 역시 소비자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였다. 다만 보조금 지급 규모와 기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정부 재정 부담이 확대되는 문제가 있다.


산업연은 국가별 가격 상승률 격차를 최고가격제의 순수한 정책 효과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환율과 세금, 각국이 사용하는 가격 지표, 국제가격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는 시차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최고가격제가 가격 상승을 없앴다기보다는 추가적인 상승 폭을 제한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최고가격제가 장기화할 경우다. 국제시장에서 지불해야 하는 원유와 석유제품 조달비용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가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결국 정유사나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 가격 상한이 장기간 고정되면 정유사의 생산·수입 유인이 떨어지고 재정 부담이 누적될 수 있다. 향후 가격 통제를 종료할 때 억눌렸던 가격이 한꺼번에 오를 위험도 있다. 특히 나프타·가스·전력 사용 비중이 높은 업종은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직접적인 혜택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한계로 꼽혔다.


산업연은 국제 제품가격과 환율, 재고 수준 등을 반영해 가격 상한을 조정하고 국제가격 충격이 완화될 경우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는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유사 손실을 보전할 때도 실제 조달비용과 운임·보험료 등을 검증해 지급액과 미지급 정산액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봤다.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저소득 가구와 필수 운송, 농어업 등 취약 부문에 집중하고 제조업은 원료 조달과 유동성을 지원하되 실제 생산·수출 감소가 큰 분야를 우선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축·상업 재고 활용과 도입선 다변화, 운송·보험 제약 완화 등 공급 측 대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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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동 산업연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성과를 물가 변화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가계의 순부담과 산업의 실질 생산·수출, 공급 안정 및 재정 부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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