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지원금 등 셈법 넘어
다음 세대 물려줄 대학 고민
고등교육 새로운 생태계 짜야

[정책의맥]대학의 미래에 투자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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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는 한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매일 이뤄진다. 학생들은 지식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며, 연구자들은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발견에 다가간다. 기업은 대학과의 공동연구에서 기술적 난제의 해결책을 찾고, 재직자와 구직자는 다시 배움으로써 새로운 진로를 준비한다. 이 모든 활동에는 우수한 교수진과 연구인력, 충실한 교육·연구 시설, 그리고 지속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 재정을 둘러싼 논의는 종종 등록금을 얼마나 올릴 것인가, 정부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에 머문다. 재원의 규모와 부담의 배분은 중요하다. 다만 그에 앞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어떤 연구 역량을 물려줄 것인가. 고등교육 투자의 가치는 오늘의 지출 규모와 함께 그 투자가 열어 줄 내일의 가능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금 대학에는 인공지능에 맞춘 교육과 평가의 혁신, 첨단 연구, 지역 산업의 전환, 성인의 재교육이라는 과제가 동시에 주어져 있다.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면서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지 않으면 부담은 학생과 교육 현장으로 돌아간다. 대학의 혁신을 기대한다면 이를 가능하게 할 투자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첫째, 교육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좋은 교수를 모시고 교육과정을 개선하며 한 사람의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연구 역시 실패와 재도전을 거쳐야 새로운 발견에 도달한다. 지원의 지속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인력 채용도 장기 연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은 대학의 기본적인 교육·연구 역량을 뒷받침하는 재원과 새로운 도전을 촉진하는 재원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해야 한다. 경쟁을 통한 지원은 혁신을 자극하지만, 공모사업 선정 여부에 따라 교육의 토대까지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대학이 자신의 강점과 여건에 맞춰 중장기 계획을 세우도록 다년간의 포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기초학문과 장기 연구에 대한 투자는 국가가 꾸준히 책임져야 한다. 필립 배럿 등 IMF 연구진은 '기초과학이 경제성장에 중요한 이유'에서 기초연구가 여러 산업과 국가에 걸쳐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연구의 성과가 널리 확산되는 만큼 개별 기업이 그 이익을 충분히 회수하기 어려워 민간의 투자만으로는 필요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 투자는 이러한 간극을 메우고 미래 혁신의 토대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연구의 수월성을 높이는 과감한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세계적 성과를 창출할 역량과 잠재력을 갖춘 연구자와 연구집단에는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마다 강점이 있는 분야를 발전시키고 학과와 대학의 경계를 넘어 인재와 자원이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연구비와 함께 우수 인력, 공동연구 시설, 전문적인 연구 지원을 갖춰야 도전적인 연구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대학 투자의 혜택은 학생에게 분명하게 돌아가야 한다. 충분한 대학 재원과 공정한 교육 기회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장학 지원은 등록금뿐 아니라 학생의 실제 생활을 살펴야 한다. 주거비와 생활비, 교재비의 부담으로 학업을 줄이거나 진로 탐색을 포기하는 학생이 없어야 한다. 실험·실습, 현장 경험과 국제교류의 기회도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학정책의 성과는 지원 인원과 금액을 넘어 학생이 충분히 배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는지로 확인해야 한다.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 등 청년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연구에 기여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고, 안정적인 여건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신진 연구자가 독립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자신의 질문을 발전시킬 기회도 넓혀야 한다. 첨단 장비를 갖추는 일과 그 장비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사람을 기르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셋째, 대학 투자를 지역의 미래와 연결해야 한다. 지역대학은 청년을 교육하는 기관이자 기업의 연구 협력자이며 주민의 평생학습 공간이다. 대학이 축적한 지식과 인재는 지역 산업과 문화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대학 지원의 성과도 취업률에 더해 지역 기업의 혁신과 새로운 일자리, 주민의 배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살펴야 한다.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기업은 중장기 목표를 함께 세우고 자원을 연결해야 한다. 지역 기업의 문제를 수업과 연구의 주제로 삼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 인재가 지역에서 역량을 펼칠 일자리를 만나도록 해야 한다. 대학 간 교육과정과 연구시설의 공유는 학생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재직자와 중장년층의 직무 전환 교육까지 연결한다면 투자의 효과는 더욱 커진다. 산업과 일자리, 정주 여건을 함께 개선할 때 대학 투자는 지역의 변화로 이어진다.


넷째, 투자 확대에는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이 함께 따라야 한다. 대학마다 학생의 특성도, 학문적 강점도, 지역에서 맡은 역할도 다르다. 지출 항목과 세부 사업을 획일적으로 정하면 현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공공적 목표와 회계 원칙은 분명히 하되, 이를 달성하는 방법은 대학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 연구의 필요를 가까이에서 파악하는 현장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대학은 그 자율성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재원을 어디에 사용했고 학생의 교육 여건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연구와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평가는 대학의 서로 다른 사명을 존중하면서 정량적 성과와 질적 변화를 함께 살펴야 한다. 장기 연구에는 충분한 시간을 주되 연구 과정의 충실성과 책임 있는 집행을 점검해야 한다.


대학 스스로의 변화도 필요하다. 행정의 중복을 줄이고 대학 간 협력을 넓히며 기부와 산학협력, 기술사업화 등으로 재원을 다변화해야 한다. 구성원과 재정 상황을 공유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함께 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대학이 자원을 충실히 사용하고 성과를 설명할 때 사회에 더 큰 투자를 요청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고등교육 투자는 대한민국이 어떤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이다. 오늘 대학에서 배우는 청년은 앞으로 산업을 이끌고 지역을 지키며 사회의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갈 사람들이다. 오늘 연구실에서 시작된 질문은 내일의 기술과 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결실을 맺으려면 긴 시간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의 미래에 투자하는 나라는 청년의 기회를 넓히고 지역의 내일을 열며 국가의 성장 기반을 다진다. 대학은 더 나은 교육과 세계적 수준의 연구, 사회에 대한 기여로 그 투자에 응답해야 한다. 국가와 대학이 책임을 나누고 함께 미래를 준비할 때 오늘의 투자는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된다. 대한민국의 내일은 오늘 대학에서 키우는 사람과 질문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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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한양대 총장·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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