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건조화 규명…기온 상승 속도 북반구 평균 2배
토양 수분 감소가 폭염 증폭…초원 줄고 황무지 늘어 식량안보 위협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러시아 남부, 카자흐스탄 서부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초원지대가 지난 100년간 경험하지 못한 고온·건조 상태로 바뀌었다. 1990년대 초부터 급격히 건조해지기 시작해 2000년대 이후에는 과거 자연적인 기후변동 범위를 벗어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땅이 마를수록 폭염이 강해지고, 높아진 기온이 다시 가뭄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기후변화를 가속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학교는 지구환경과학부 국종성 교수 연구팀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서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급격한 '기후체제 전환'이 발생한 사실을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게재됐다.
북반구 중위도와 서유라시아 초원지대는 1990년대 초부터 급격히 건조해졌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과거 자연변동 범위를 벗어난 건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연구팀 제공
연구팀은 1901~2024년 기후자료와 여러 기후모델의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서유라시아 초원지대는 최근 수십 년간 북반구 중위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여름철 건조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992~2010년 이 지역의 여름철 기온은 10년당 약 0.63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북반구 육지 평균 상승률인 0.32도의 약 2배다. 1992~1993년을 전후로 건조화가 급격히 진행됐으며, 2006년 전후에도 통계적으로 뚜렷한 기후 상태의 변화가 확인됐다. 2024년까지 과거의 기후 상태로 회복되는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땅이 마르자 폭염 심화…기온 상승 최대 44% 증폭
급격한 기후변화를 일으킨 핵심 요인 중 하나는 토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이었다.
일반적으로 토양에 수분이 충분하면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해 지표면을 식힌다. 사람이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추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가뭄으로 토양이 마르면 증발을 통한 냉각 효과가 약해진다. 태양에서 받은 에너지가 지표면과 대기를 가열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면서 폭염이 강해진다.
높아진 기온은 대기의 증발 요구량을 증가시켜 토양을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결국 가뭄이 폭염을 강화하고, 폭염이 다시 가뭄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토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을 억제한 기후모델과 정상적인 모델을 비교했다. 분석에 사용된 7개 모델 중 5개에서 토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을 제거하자 온난화와 건조화가 크게 약해졌다.
1990년대 이후 토양 수분 감소로 지표면 냉각 기능이 약해지면서 폭염과 가뭄이 서로 심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농경지와 초원의 식생 생산성도 감소하고 있다. 연구팀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이들 모델에서 토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은 기온 상승 추세의 약 24~44%, 잠재증발산 증가 추세의 약 37~68%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토양 수분 감소가 단순히 가뭄의 결과에 그치지 않고 기후변화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인간활동에 따른 지구온난화와 자연적인 대기순환 변화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증가 등에 따른 온난화가 고온·건조화의 배경을 형성한 가운데,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대기순환 변화가 강수 감소와 기온 상승을 더욱 부추긴 것으로 분석했다.
초원 5% 감소·황무지 26% 증가…곡물 생산에도 경고
기후체제 전환의 영향은 실제 생태계에서도 확인됐다.
위성 관측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서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초원 면적은 2010년 이전 평균보다 약 5% 감소했다. 반면 식생이 없는 나지 면적은 약 26% 증가했다. 농경지와 초원의 식생 총일차생산량(GPP)도 감소했다. 식물의 광합성 활동과 탄소 흡수 능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이 지역은 곡물 재배와 목축업이 활발한 곳이다. 장기적인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면 농업 생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초원 생태계의 황폐화가 심화될 수 있다. 국제 곡물시장에 의존하는 한국에도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다.
다만 이번 연구가 실제 곡물 생산량 감소나 국제 곡물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분석한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는 주요 농업지역에서 기후체제 전환이 발생할 경우 식량 공급망의 위험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앞으로 온난화가 지속되면 서유라시아 초원지대의 건조화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감축하더라도 과거의 습윤한 기후 상태로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국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구온난화가 반드시 점진적인 기후변화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토양이 건조해지면서 폭염을 강화하고, 강화된 폭염이 다시 가뭄을 심화시키는 과정에서 지역 기후가 급격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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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러한 기후체제 전환이 다른 반건조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미래 기후위험을 평가할 때 평균적인 온난화뿐 아니라 급격한 변화와 복합재해의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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