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설비 감축에도 중국 증설 지속
설비 줄여도 원가 격차 해소 한계
공정 혁신·고부가 제품 개발 관건
"우리가 줄이는 에틸렌 물량이 많아야 370만t인데, 중국은 최근 몇 년 새 3000만t 가까이 늘렸습니다. 그걸 줄여서 뭐가 달라집니까."
최근 만난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설비를 줄이는 것만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 8월 나프타분해설비(NCC)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270만~370만t 감축하기로 했다. 국내 설비의 18~25%에 해당한다. 공급과잉을 완화하고 비효율적인 설비를 정리해 수익성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경쟁 무대가 국내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생산 제품의 60% 이상을 수출한다. 국내 설비를 줄여도 해외에서는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중국의 증설 규모는 압도적이다. 중국 생태환경부가 집계한 2020년 에틸렌 생산능력은 3518만t이다. 지난해에는 6270만t으로 늘었다. 5년 새 약 2750만t 증가한 셈이다. 지난해 신규 생산능력만 815만t에 달한다. 한국의 최대 감축 목표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공급과잉을 고려하면 설비 감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감축 규모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노후 공장을 정리하고 효율적인 설비에 생산을 집중하면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중국 신규 설비와의 원가 격차까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적자를 줄이는 것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되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앞서 만난 관계자는 NCC를 피처폰에 비유했다. "피처폰 회사들한테 물량 줄이면 살려주겠다고 했다면 그 회사들이 살아남았겠습니까. 결국 이긴 건 스마트폰을 만든 쪽입니다." 줄이는 일과 경쟁력을 만드는 일은 다르다는 뜻이다.
필요한 것은 같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드는 공정 혁신과 고부가 제품 개발이다. 설비 감축에 그치지 않고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제품을 차별화해야 한다. 정부도 기술개발과 고부가 전환 지원을 내걸었다. 이제는 감축 규모뿐 아니라 남은 설비의 원가와 제품 경쟁력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성과로 따져야 한다.
공장 폐쇄가 지역경제와 고용에 미칠 충격은 작지 않다. 그만큼 구조조정은 분명한 성과를 남겨야 한다. 설비를 얼마나 줄였는지가 아니라 남은 기업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가 중요하다. 경쟁력을 바꾸지 못한다면 구조조정 끝에 남는 것은 살아난 산업이 아니라 규모만 작아진 한국 석유화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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