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규 전 국제검사협회장
관·민 공조·해외 베테랑 영입
중장기 투자 단행해야 할 때
"현재 해외에서 우리 기업들이 겪는 사건에서 국내 로펌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현지 로펌과 협력하더라도 주도권 없이 끌려다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한계를 타개하려면 결국 현지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주요 인사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하이레벨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합니다."
국제검사협회(IAP) 회장을 거치고 현재 세계법조인협회(WJA) 부회장인 황철규(사법연수원 19기)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은 국내 로펌의 해외 시장 진출 현주소와 관련해 이같이 진단했다. 글로벌 법조 네트워크에 정통한 황 변호사는 K로펌들이 외형적 거점 확대에는 나섰지만, 정작 사건의 성패를 가르는 현지 주류 사회와의 심층 네트워킹과 정치·지정학적 통찰력은 여전히 취약하다고 봤다.
황 변호사는 무엇보다 해외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 이른바 '관시(關係)'와 직접 소통 창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적 네트워크는 미국·유럽은 물론이고 중동이나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처럼 사법체계가 탄탄히 갖춰지지 않은 국가일수록 훨씬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현재 우리 로펌들이 주로 진출해 있는 동남아 등지를 봐도 현지 사무소는 있지만, 현지의 핵심 인물이나 주류 네트워크에는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현지 로펌을 활용하더라도 우리 측이 직접 현지 핵심부와 닿는 창구를 쥐고 있어야 예기치 못한 기업의 부당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현지 소통 창구 부재로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황 변호사는 "최근 중동의 한 국가에 진출한 국내 중견기업이 사기 피해를 입어 현지 검찰에 고소장을 냈고, 사건을 현지 로펌에 맡겼다"며 "그런데 한국 같으면 정보공개청구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사 내용조차 현지 로펌을 통해선 일체 파악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로펌이 아닌 해외 네트워크를 가동해서야 수사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현지 로펌조차 주요 인사들과 닿는 소통 창구가 전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 국내 로펌들은 이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축적하지 못했을까. 황 변호사는 원인으로 '현안 위주의 단발성 업무 스타일'을 지목했다. 그는 "현재 한국 로펌들은 당장 사건이 터져 필요할 때만 외교부나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정보기관, 국제기구 출신의 해외 전문가들을 찾아가 단발성으로 협업을 요청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로펌 내부에 네트워크가 견고히 축적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황 변호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해법으로 '관(官)·민(民) 상시 공조'와 '검증된 해외 베테랑에 대한 중장기 투자'를 제시했다. 그는 "우선 법무부·외교부·산자부 등 정부 부처와의 상시 네트워킹과 협업을 대폭 늘려야 한다"며 "나아가 해외 인맥을 백지상태에서 새로 쌓기는 어려운 만큼, 외교부·산자부·정보기관·국제기구 출신으로 이미 해외 근무를 거쳐 세계 각지에 두터운 네트워크를 가진 인력들을 과감히 영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통상 한 나라의 로펌 경쟁력은 그 국가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만큼, 한국 로펌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은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며 "당장 눈앞의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단기 현안 위주의 대응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심층적인 중장기 투자를 단행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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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변호사는 대표적인 국제통이자 기획통이다. 1997년 의정부지청 근무 시절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관련 사건 담당 검사로 국제업무를 시작했다. 2001년 주UN대표부 법무협력관을, 2006년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을 맡았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2010년 대검 국제협력단장을 맡으며 세계검찰총장회의 준비기획단장을 겸했다. 2011년 IAP 집행위원, 2014년 IAP 부회장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2019년 4월 IAP 회장에 출마해 유럽 대표인 프랑스 고검장을 꺾고 당선됐다. 같은해 9월 취임해 3년간 국제무대에서 활동했고, 2023년엔 세계법조인협회(WJA) 부회장으로 선출돼 현재 활동 중이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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