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퇴직연금 소득대체률 13% 그쳐
수익률 5%만 내도 20%로 올릴 수 있어
85% 예금 쏠림 디폴트옵션 바꿔야
기금형 도입…유형별 목적 맞게 재설계해야

500조원을 넘어선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고용 형태에 따른 가입 격차와 운용 방식의 양극화는 다층노후소득보장 체계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국민연금 기금 소진 우려가 겹친 상황에서 퇴직연금이 실질적인 노후 안전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입과 적립, 운용, 수령 전 단계에 걸친 다각도의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자산 양극화]③예금 쏠림만 해소해도 연금 격차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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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엔 보조금 등 지원, 중도 인출·IRP 해지 요건은 강화해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현행 운용체계에서는 퇴직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13.2%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구조에서는 소득대체율이 13%대에 그치지만, 중도 누수를 막고 운용 효율화를 통해 연 5% 수익률만 달성해도 소득대체 기여도는 20%를 넘어서고 7% 달성 시에는 30% 가까이 확대될 수 있다"며 "국민연금 실질소득대체율이 3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다층노후소득보장을 위한 퇴직연금의 역할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먼저 노후 빈곤을 막기 위해서는 취약계층의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가입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저소득 근로자의 낮은 가입률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매칭형 지원'이 거론된다. 정승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연금 가입 자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연금계좌에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추가 지원금을 보조해 주는 매칭형 방식의 도입이 효과적"이라며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취약 계층의 자발적 연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고용주 매칭, 정부 매칭, 정액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매칭형 제도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경식 한국퇴직연금개발원장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이직률이 높고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연금을 노후까지 끌고 가기 힘든 구조"라며 "현재 푸른씨앗 등의 사업비 감면 수준을 넘어 저소득·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연금 자산의 누수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요구된다. 주거비 중도인출과 이직 시 개인형퇴직연금(IRP) 해지로 해마다 17조2000억원의 자금이 연금 밖으로 유출되는 실정이다. 이에 급전 필요시 납입을 조절하는 '유연 납입제' 도입과 함께 지나치게 느슨한 중도 해지 요건을 조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직 시 IRP로 넘어간 퇴직금을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이 해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인출이 자유롭다"며 "퇴직연금이 실질적인 노후 자산으로 축적되려면 중도 인출뿐만 아니라 이직 시 IRP 계좌의 무분별한 해지 요건도 점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금 쏠린 디폴트옵션 전면 개편 필요…TDF 활용 

[연금자산 양극화]③예금 쏠림만 해소해도 연금 격차 줄인다 원본보기 아이콘

운용 단계에서는 유명무실해진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의 개편이 핵심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적립금 53조3000억원 중 85.4%가 안정형(원리금보장)에 쏠려 연간 수익률이 3.69%에 그쳤다. 가입자가 디폴트 상품을 다시 직접 골라야 하는 '선택형' 구조와 원리금보장 상품 편입 탓이라는 지적이다.


홍 원장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이 포함된 것 자체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며 "금융기관 이해관계에 따른 상품 나열에서 벗어나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 등을 디폴트옵션으로 적극 활용해 장기 분산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연구위원 역시 "디폴트옵션의 실효성은 가입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가 선택하지 않아도 저수익 상품에 방치되지 않고 분산된 투자 포트폴리오로 운용되도록 만드는 데 있다"며 "사후 평가와 관리를 통해 디폴트옵션 제도가 수익률 제고로 이어지도록 상품 승인과 변경 및 취소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금형 안착 관건…3대 모델 실효성 확보가 핵심

정보력과 운용 역량이 부족한 개인 근로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기금형'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2026년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합의된 기금형 모델은 기존 계약형과의 병존을 전제로 ▲공공형 ▲비영리 연합형 ▲금융기관 개방형 등 3대 유형으로 추진되고 있다.


남 연구위원은 "기금형 지배구조 도입의 본질은 단순히 상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 의사결정과 수탁자책임을 통해 자산관리의 책임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며 "기금형과 계약형이라는 복수의 지배구조가 각자의 장점을 바탕으로 경쟁하고 전문적 자산배분과 수탁자책임을 통해 장기 운용 성과를 제고하며 그 성과가 안정적인 연금급여로 연결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법 논의 과정에서 선택지를 너무 열어두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 교수는 "저조한 수익률 문제를 풀려면 기금형 퇴직연금이나 디폴트옵션을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다만 사업장과 근로자 개인에게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는 미온적 방식으로는 '구색 맞추기'에 그칠 수 있는 만큼, 사업장 단위의 일괄 전환 등 근로자 간 수익률 격차를 구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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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원장은 "30인 미만 영세기업 등이 기금형에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초기 최저보장이율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20년 넘게 부실화된 가입자 교육과 퇴직연금 정보 제공 채널을 정상화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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