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처럼 나눠 받고 수령 시점도 조절
'장기 현금흐름·유동성 확보' 경쟁 치열
당국도 사망보험금 생전 활용 유도
전문가 "수령액·보증기간 등 비교 안내해야"
생명보험회사들이 은퇴자금을 장기간 나눠 받으면서도 필요할 때 일부를 꺼내 쓸 수 있는 연금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금 수령 시점과 인출 방식을 유연하게 설계해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관리하도록 돕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를 시행한 점도 이러한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28일 생보업계에 따르면 주요 생보사들의 상품·서비스 제공 방식이 단순한 자금 축적을 넘어 은퇴 후 자금을 안정적이고 유연하게 꺼내 쓸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주력 상품의 규제 리스크와 맞물려 있다. 과거 생보업계는 10년 이상 유지 시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단기납 종신보험을 마치 목돈 마련을 위한 저축성 상품처럼 판매하며 환급률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과도한 해지율 가정을 통한 환급률 경쟁에 제동을 걸면서 생보사들은 은퇴 소득을 보장하는 상품 개발을 다양화하고 고도화하는 데 눈을 돌리게 됐다.
고객들의 은퇴자금 운용 행태도 상품 다변화를 이끈 요인이다. 노후자금은 은퇴 후 30년 이상 나눠 써야 하지만 여전히 일시금으로 찾는 경향이 강하다. 고용노동부와 생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한 60만1000명 가운데 83.5%는 적립금을 일시금으로 찾아갔다. 연금 수급자 중 수령 기간을 20년 초과로 선택한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이에 생보사들은 은퇴자금이 조기에 소진되지 않도록 장기 분할 지급을 보증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이 업계 최초로 선보인 개인형 퇴직연금(IRP) 전용 상품 'IRP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이 대표적이다. 만 50세부터 IRP 적립금을 맡기면 만 55세 이후부터 20년 동안 원금을 동일한 금액으로 나눠 지급하도록 보증한다. 투자 손실이 발생해도 20년간 지급은 유지되며 적립금은 'MVP펀드'를 통해 분산 투자된다. 투자수익률을 연 3.75%로 가정할 경우 65세부터 100세까지 연금을 이어받을 수 있는 구조다.
생보사들은 연금에 돈이 묶여 급할 때 쓰지 못한다는 가입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유동성을 강화한 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삼성생명이 판매 중인 '삼성 굴려받는연금보험'은 가입 후 10년 동안 고정이율을, 이후에는 공시이율을 적용한다. 중도에 목돈이 필요할 경우 해지하지 않고도 별도 심사 없이 해약환급금의 최대 95%까지 보험계약대출을 이용하거나 적립액 일부를 중도 인출할 수 있도록 해 자금 유동성을 강화했다. 다만 금리 하락기에는 공시이율 적용 시 보험금 수령액이나 적립금 증가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연금 수령을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기능도 도입됐다. KB라이프의 'KB 100세든든연금보험'은 연금 수령을 일정 기간 중단해 적립액을 늘린 뒤 다시 받을 수 있는 '스톱&고(Stop & Go)' 기능을 탑재했다. 의료비나 주거비 등 목돈이 필요할 때는 '노후긴급자금' 기능을 통해 연금 재원 일부를 찾을 수 있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도 생보업계의 노후자금 유연화에 힘을 싣고 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종신보험의 사망보장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대신 감액된 해약환급금을 생전에 나눠 받는 제도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해당 서비스 취급 생보사를 기존 5개사에서 19개사로 늘렸다. 신청 가능 연령은 만 55세 이상이다. 은퇴 직후부터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 발생하는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기)'를 메우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노후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생보업계가 상품을 다양화하는 한편 복잡해진 상품 구조에 맞춰 소비자 보호 장치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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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연금 상품 구조 고도화,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 등 가입자 개인의 상황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상품이 다양화되는 것은 인구구조와 소비자 수요 변화에 부응하는 큰 장점"이라면서 "보험사는 가입자가 상품별 예상 보험금 수령액뿐 아니라 지급 개시 시점, 보증기간, 중도 해지 시 불이익 등을 타사 상품과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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