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 IPO 중단이 남긴 숙제
'자본 조달'과 '주주 가치'의 균형
SK하이닉스가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전 투자 유치와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했다. 회사는 자본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수요에 대응할 투자재원을 마련하려던 구상이 일단 멈춘 것이다. 그 배경을 어느 한 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논란은 한국 자본시장에 익숙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기업의 자금 조달과 기존 주주의 권익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가.
인수와 사업 정상화 과정의 위험을 감수한 SK하이닉스 주주들로서는 성장의 결실을 어떻게 나눌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핵심사업을 별도로 상장한다는 소식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회사가 사업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기존 주주는 자신의 투자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고 싶어 한다.
다만 자회사 상장이 곧 주주 가치 훼손이라는 주장은 신중해야 한다. 신주를 발행하면 모회사의 지분율은 낮아지지만, 그 대가로 자회사에 새로운 자금이 들어온다. 공정한 가격에 자금을 조달하고 수익성 있는 투자에 쓴다면 지분율이 줄어도 모회사가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커질 수 있다. 지분율의 희석과 경제적 손실은 같은 뜻이 아니다. 자회사 상장은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사업 가치를 시장에서 평가받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검토의 출발점은 구체적인 거래 조건이어야 한다. 신주를 발행해 자회사에 투자금을 넣는 것인지, 모회사가 가진 지분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것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인정받는 기업가치와 매각 규모, 자금 사용처에 따라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은 달라진다. 미래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가격에 지분을 넘기면 기존 주주의 몫이 새 투자자에게 이전될 수 있다. 이를 검증할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경영진과 이사회의 책임이다.
모회사 할인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자회사가 상장됐다고 해서 모회사의 보유 지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회사의 성과가 배당이나 다른 방식으로 모회사 주주에게 돌아올 경로가 불분명하다면 시장은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 있다. 여러 단계의 지배구조에서 이해 상충 우려까지 커지면 할인은 더 깊어질 수 있다. 기업집단 전체의 성장이라는 설명만으로 개별 상장회사 주주의 이익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금융당국이 해외 상장에도 모회사 이사회의 주주 보호 의무가 적용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복상장 기준은 주주 영향평가와 보호 방안 마련, 주주와의 소통, 이사회 결의와 공시를 요구한다. 상장 장소가 해외라는 이유로 국내 모회사 주주에 관한 책임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회사의 자금 조달 결정이라는 설명으로 모회사 이사회가 판단과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된다.
이 절차가 서류를 갖추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사회는 상장 전후의 지분 가치와 예상 투자 수익, 다른 자금 조달방식의 비용을 비교해 공개해야 한다. 독립적인 검토를 통해 가정이 낙관적으로 치우치지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주주에게 불이익이 예상된다면 이를 줄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주주 설득은 발표 이후의 홍보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의 일부여야 한다.
상장 검토를 중단했다고 해서 투자재원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자체 현금흐름을 활용하면 다른 투자 여력이 줄고,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은 이자 부담과 재무위험을 높일 수 있다. 경영진은 이런 비용까지 포함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자금 조달의 편의성이나 상장 자체에 대한 선호보다 기존 주주가 부담할 비용과 얻을 편익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중복상장을 둘러싼 우려를 덜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기업의 상장 검토 중단만으로 주주 보호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유사한 결정을 내릴 때도 같은 원칙과 절차가 작동해야 한다. 성장을 위한 자본 조달과 주주 보호는 함께 추구해야 할 과제다. 기업이 투자 기회를 설명하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줄 때 주주도 장기 투자에 힘을 보탤 수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유니클로가 이 가격이라고?"…인상 예고했다가 소비자들 '발칵'
박성규 미국 윌래밋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