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회동 1년]①메모리 호황·협력 확대‥韓 제조사 AI경쟁력 확대로 이어져야
젠슨 황, 韓 제조업 역량평가
26만장 GPU 공급 약속
반도체 넘어 韓 제조업 전반과 협력 계기
中 기술추격·자금 공세 대응
데이터 축적·설계·현장 검증 등 자체 기술로 발전시켜야
지난해 10월30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치킨집.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맥주잔을 부딪쳤다. 매장 안팎으로 시민과 취재진이 몰렸고 황 CEO가 "에브리바디, 디너 이즈 프리!"를 외치자 환호가 터졌다. 이른바 '깐부 회동'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부터)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30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치맥' 회동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당시 반도체업계의 관심은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엔비디아의 품질 검증을 통과해 공급을 늘릴 수 있느냐에 쏠렸다. 오는 30일 회동 1년을 맞는 한국 산업에는 여기에 과제가 하나 더해졌다. 메모리 공급으로 쌓은 경쟁력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제품과 제조기술로 이어가는 일이다.
황 CEO는 당시 한국의 제조업 역량을 거론하며 반도체와 자동차, 선박, 전자제품에 이어 '지능'을 수출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정부와 기업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이상 도입 계획도 공개됐다. 이후 기업들은 반도체 설계·생산부터 로봇과 자율주행까지 협력을 넓히고 있다. 다만 발표된 투자가 실제 가동과 사업 성과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점검이 필요하다.
◆ 메모리에서 공장·로봇으로…협력 범위 넓히는 기업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HBM4 상업 출하를 시작한 데 이어 엔비디아와 반도체 설계·생산에 AI를 적용하는 'AI 팩토리'를 추진하고 있다. AI용 반도체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이를 활용해 생산 공정도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엔비디아와 차세대 메모리 공동개발을 위한 다년 기술협력을 발표했다. 협력 대상에는 AI 가속기용 메모리 외에 반도체 설계 시뮬레이션과 공장의 디지털 전환도 포함됐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로봇과 자율주행으로 협력이 확장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월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산업화 전략을 공개하고 2028년부터 미국 공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은 로봇을 학습시키고 성능을 검증하는 현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LG는 자체 AI 모델 '엑사원'을 로봇·스마트공장·데이터센터 기술과 연결하고 있다. 두산은 자율 건설장비와 로봇, AI 데이터센터용 발전설비에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다. AI 수요에 반도체를 공급하던 한국 기업들이 AI로 공장과 기계의 성능을 높이는 사업에도 나서는 것이다.
황 CEO도 지난 6월 다시 한국을 찾아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인들을 만났다. 서울대에서는 AI 시대에 기계공학과 제조업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병탁 서울대 교수는 "산업현장에서 데이터를 실증하고 축적하면 우리도 피지컬 AI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투자와 연구개발(R&D)이 깐부 회동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회동을 계기로 기존 사업에 대한 협력이 확대된 만큼, 앞으로는 제품 개발과 생산성 향상 등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따져봐야 한다.
◆ GPU 26만장, 도입 발표와 실제 가동 사이= 협력의 기반이 될 GPU 확보 역시 발표 물량과 실제 이용 가능한 물량을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GPU 26만장 중 약 81%인 21만장은 민간 기업의 도입 계획이다. 네이버클라우드 6만장 이상, SK그룹과 삼성전자 각 5만장 이상, 현대차그룹 5만장으로 구성됐다.
이들 물량에 대한 정부와 기업 간 별도의 이행 협약이나 확약은 없고 기업별·연도별 반입 및 가동 물량도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정부와의 협약이 없다는 것이 기업과 엔비디아 간 개별 계약 여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몫 5만장도 도입 시기에 따라 진행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구매한 약 1만3100장은 서비스 중이다. 올해 계약한 9704장 중에서는 10월8일까지 2608장(26.9%)이 실제 반입됐다. 반면 지난 8월 말 기준 예산 집행률은 79.8%였다. 예산 집행이 곧 장비 반입이나 서비스 개시를 의미하지는 않는 셈이다.
기존 정부 GPU의 월평균 활용률은 지난 3월 26.8%에서 9월 51.5%로 높아졌다. 최 의원은 "GPU 경쟁력은 몇 장을 계약했느냐가 아니라 언제 들어와 얼마나 빨리 쓰이느냐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GPU 도입이 기업의 제품 개발과 공장 혁신을 뒷받침하려면 장비를 제때 가동하고, 필요한 기업과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 메모리 호황, 제조업 경쟁력으로 이어가야= AI 수요에 힘입은 메모리 호황은 한국 기업들이 후속 투자에 나설 여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반도체 호황을 근거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3.2%로 전망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가 실적 개선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막대한 AI 투자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9.48%, 11.06% 하락했다. 현재의 호황과 별개로 향후 경쟁력과 투자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조 AI 분야에서도 한국의 우위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의 약 59%가 중국에 집중됐다. 중국은 메모리와 AI 분야에서도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공장에 축적된 데이터와 설계 능력, 로봇의 현장 검증 경험을 자체 기술로 발전시켜야 한다. 같은 엔비디아 플랫폼을 쓰더라도 현장 데이터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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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투자는 수요와 수익성을 따져 확충하되 차세대 메모리와 산업용 AI, 로봇 연구는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메모리 호황의 수익과 확보한 연산 능력이 국내 장비·부품·소프트웨어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깐부 회동 1년의 성과도 투자 발표 규모를 넘어 실제 공장과 제품에서 확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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