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자택서 별세…향년 74세
1976년 데뷔작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코인로커 베이비스'부터 '반도에서 나가라'까지…전후 일본의 욕망·폭력·상실 조명
지난 17일 향년 74세로 별세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코인로커 베이비스’, ‘반도에서 나가라’ 등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욕망과 불안, 폭력을 그려냈다. 겐토샤
2000년 발표한 소설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에서 중학생의 입을 빌려 일본 사회의 풍요와 불안을 압축했던 작가. 전쟁과 폭력, 성과 마약을 거침없이 묘사하며 전후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든 소설가 무라카미 류(村上龍)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23일 일본 출판사 겐토샤(幻冬舍)와 교도통신,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무라카미는 지난 17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겐토샤와 무라카미 류 사무소는 공동 발표문에서 "항상 젊은 세대를 향해 충격적인 작품을 발표해 온 작가의 이른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1952년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군 기지가 자리한 도시에서 성장했다. 이후 도쿄도 훗사시의 미군 기지 주변에서 생활한 경험은 그의 문학적 출발점이 됐다. 무사시노미술대학 재학 중이던 1976년 발표한 첫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미군 기지 인근에서 마약과 성에 탐닉하며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기존 일본 문학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적나라한 묘사는 문단과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무라카미는 이 작품으로 군조신인문학상과 제75회 아쿠타가와상을 잇달아 받으며 24세에 문단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작품은 단행본과 문고본을 합쳐 약 350만부가 팔렸다.
그가 주목한 것은 풍요로운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1980년 발표한 '코인로커 베이비스'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역의 물품보관함에 버려진 두 아이의 성장과 파괴적 충동을 그렸다. 이 작품으로 노마문예신인상을 받았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에서는 정치와 경제 체제의 불안을, 자전적 청춘소설 '69'에서는 1960년대 말 학생운동과 저항문화를 다뤘다.
그의 작품은 일본 사회의 변화와 함께 소재를 넓혀갔다. 1990년대에는 '5분 후의 세계', '인 더 미소수프' 등을 통해 전쟁과 도시의 폭력, 개인의 고립을 파고들었다. '인 더 미소수프'로 1998년 요미우리문학상을, '공생충'으로 2000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받았다.
2000년 출간한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는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전국의 중학생들이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경제·사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기존 교육과 국가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 작품 속 "희망만은 없다"는 대사는 이후 일본 사회의 정체와 상실감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널리 인용됐다.
무라카미는 이 문장을 다른 맥락에서 다시 꺼내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소설 속 대사를 언급한 뒤, 모든 것을 잃은 일본이 오히려 희망을 얻었다고 썼다. 물질적 풍요가 곧 희망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은 재난 속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연대에 대한 관찰로 이어졌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2005년 발표한 장편 '반도에서 나가라'도 익숙하다. 북한 무장세력이 일본 후쿠오카를 점거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작품으로, 일본 정부의 위기 대응과 사회적 취약성을 그렸다. 이 소설로 노마문예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파격적인 소설뿐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실용서도 썼다. 2003년 출간한 '13세의 헬로 워크'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신의 관심사를 출발점으로 다양한 직업을 탐색하도록 구성한 책이다. 600개가 넘는 직업을 소개하며 일본에서 180만부 이상 판매됐다. 기존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작가가 어린 독자들에게는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영화와 방송에서도 활동했다. 자신의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토파즈', '교코(KYOKO)' 등을 직접 연출했으며, '69'는 재일교포 출신 이상일 감독이 영화화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1970년대 후반 일본 문단에 등장한 두 명의 '무라카미'로 주목받으며 '더블 무라카미'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2006년부터는 TV도쿄의 경제 토크 프로그램 '캄브리아 궁전'에서 배우 고이케 에이코와 함께 진행을 맡았다. 기업 경영자와 경제계 인사들을 인터뷰하며 약 20년간 방송을 이끌었다. TV도쿄는 23일 추모 성명을 통해 그가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1000명이 넘는 출연자를 만나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질문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3월 26일 방송을 끝으로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무라카미는 2015년 문예춘추 대담에서 사회비판을 계속하는 일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하면서도 "소설에서는 쓰겠다"고 했다. 현실을 직접 비판하는 것과 소설 속에 그 현실을 그려 넣는 일을 구분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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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발표한 소설 '유튜버'가 마지막 소설로 남았다. 올해 '캄브리아 궁전' 진행자 교체를 앞두고 그는 "작가는 죽지 않는다. 다만 떠날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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