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6명 연금수익률, 겨우 물가상승률 수준[연금자산 양극화]②
2%대 머물러…국민연금보다 훨씬 낮아
원리금 보장형에 '몰빵'한 탓
디폴트옵션 운용방식 개선해야
'투자하는 연금' 시대에 개인의 투자 여건 차이가 노후자산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상품 선택권이 없는 확정급여(DB)형은 원리금 보장형에 치우쳐 있고, 개인형퇴직연금(IRP)이나 확정기여(DC)형도 원리금 보장형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리금 보장형은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디폴트옵션 제도 개선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7일 아시아경제가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퇴직연금(DB·DC·IRP) 적립금 업권별 1위 사업자 3사를 분석한 결과, 10명 중 6명꼴로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3사 합산 적립금 총 164조5772억원 중 59.4%(92조8630억원)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해당했다. 삼성생명이 전체 적립금 중 원리금 보장 투자 비율 77.9%로 가장 높았고, 신한은행이 67.3%, 미래에셋증권은 28.9% 순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DC·IRP에서 원리금 보장형 비중이 23%대로 낮았지만, DB형에서는 75.2%로 비중이 컸다.
수익률 차이도 뚜렷했다. DC형 기준 신한은행 가입자의 원리금 보장형 10년 수익률은 2.21%, 비보장형은 6.21%였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각각 2.35%·6.11%, 삼성생명 2.64%·6.16%로 많게는 2.8배가량 차이가 났다. 이들 DC형 원리금 보장형 수익과 국민연금(NPS)의 최근 10년 수익률 평균값(8.21%)을 비교하면 3.5배까지 차이가 벌어진다. 국민연금이 최고 수익률을 낸 지난해(18.82%)와는 7배 이상의 격차다.
실제로 이 같은 투자 성향이 연금 수익률 상·하위 10%를 갈랐다.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투자백서에 따르면 연금 수익률 상위 10%는 지난해 1년간 19.5%의 수익을 냈는데,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에 쏟았다. 반면 하위 10%는 원리금 보장형에 적립금 74%를 방치하며 수익률을 0.5% 내는 데 그쳤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2.1%)을 고려하면 사실상 손해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 선택'이 노후 소득 가르는 구조
연금을 단순히 쌓아두지 않고 투자한다는 개념 자체는 확산하고 있다. 개인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DC, IRP형의 가파른 성장 추이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DC 적립금은 전년 대비 19.6%, IRP는 32.6% 증가했다. DB 증가율(6.7%) 대비 큰 폭의 도약이다.
문제는 개인의 투자 여건이나 능력에 따라 투자 양상과 수익률까지 달라진다는 점이다. 투자에 관심이 있어 적극적으로 연금을 굴리는 사람과, 소극적으로 원리금 보장형을 선택하거나 자금을 방치한 경우 연금자산 격차는 점점 불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직장인 퇴직연금 인식조사에 따르면 '적립금 운용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57.1%를 차지했다. 또 응답자의 62.8%가 연금 적립금은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기조로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미국, 호주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2023년까지 5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을 비교하면 한국이 2.42%, 미국 10.12%, 호주는 7.42%에 달한다.
디폴트옵션 도입했지만…이마저 '원리금'
미국과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개인 가입자들이 투자의 귀재라서가 아니다. 이들 국가에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가입자가 투자를 어려워하거나, 여건이 안 돼 별도의 운용을 하지 않을 때 자동으로 상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디폴트옵션인 'QIDA'는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등에 투자하고, 원칙적으로 원리금 보장형이 포함되지 않는다. 호주의 디폴트옵션 '마이슈퍼(MySuper)' 역시 주식·채권·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자동으로 분산 투자된다. 원리금 보장 성격의 선택형 옵션도 존재하지만, 연례 성과평가를 통해 수익률이 벤치마크에 미달한 상품을 실패 상품으로 분류하는 규정이 있다.
국내에도 퇴직연금 가입자의 소극적 운용 관행을 보완하고 장기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2023년 디폴트옵션이 시행됐다. 하지만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의 82.5%(46조1028억원)가 원리금 보장형에 쏠려 있다. 예금 등이 주로 포함된 초저위험 디폴트옵션의 1년 수익률은 2.37%에 불과했다. 반면, 고위험 상품의 경우 32.66%, 중위험은 21.78%로 최대 14배 가까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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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호주에서 디폴트옵션이 방치된 연금 계좌에 자동 적용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가입자가 상품을 선택해야만 굴러간다는 점도 차이다. 제도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가입자에게 선택을 넘기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연금 관계자는 "방치된 자금이 디폴트옵션에 들어간다는 콘셉트인데, 그 안에서 선택해야만 굴러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디폴트(Default·기본값)'가 아니지 않나"라며 "중장기적으로 변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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