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배 차이' 노후대비 연금 시장도 양극화 극심

개인연금 가입률 저소득층 0.1% vs 고소득층 42%
국민연금 못받는 60~64세 절반 넘게 연금소득 '0'
양극화 장기적으로 누적되며 격차 갈수록 벌어져
가입 지원·중도인출 예방 등 제도적 지원 필요

국내 연금자산 시장이 2300조원을 넘어서고 퇴직연금 시장은 500조원을 돌파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금 가입부터 노후 수령에 이르기까지 계층간 격차가 누적되는 '연금자산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소득 수준과 사업장 규모, 고용 형태 및 자산 유무에 따라 노후 준비의 출발선 자체가 다르게 설정되면서 연금 제도가 노후 안전망이 아닌 새로운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연금 가입부터 노후 수령에 이르기까지 계층간 격차가 누적되는 '연금자산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상용근로자의 희망 은퇴연령은 65.9세인 반면 비수도권 임시·일용근로자의 희망 은퇴연령은 73.9세로 무려 8년가량 늦게까지 일터에 내몰려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티이미지

연금 가입부터 노후 수령에 이르기까지 계층간 격차가 누적되는 '연금자산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상용근로자의 희망 은퇴연령은 65.9세인 반면 비수도권 임시·일용근로자의 희망 은퇴연령은 73.9세로 무려 8년가량 늦게까지 일터에 내몰려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티이미지

AD
원본보기 아이콘

소득·사업장 따라 갈리는 가입률…최대 400배 이상 격차

국내 연금 시장의 급격한 양적 성장 이면에는 소득 수준과 기업 규모에 따라 연금 가입률이 최대 400배 이상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남들은 은퇴한다는데"…74세까지 일하겠다는 사람들, 무슨 일[연금자산 양극화]① 원본보기 아이콘

우선 자율적으로 가입하는 개인연금(연금저축)의 경우 소득 여력에 따라 가입 문턱에서부터 크게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연 근로소득 20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연금저축 가입률은 단 0.1%로 사실상 전무한 반면 8000만원 초과 근로자의 가입률은 42.0%에 달해 420배의 격차를 나타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분석에서도 연소득 4000만원 이하 가입률은 1.5%에 불과한 반면 1억원 이상 고소득자는 49.0%를 기록해 저소득층일수록 개인연금을 통한 노후 대비에서 완전히 소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연금 역시 근로자의 고용 환경에 따라 출발선이 극명하게 갈렸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퇴직연금통계 결과'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률은 70.6%에 달하는 반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11.9%에 불과해 기업 규모에 따라 6배 가까운 격차가 발생했다. 30인 미만 사업장 전체로 넓혀봐도 가입률은 30%대에 그쳤다.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 가입자조차 3명 중 1명은 실질적인 납부 여력이 없는 '납부예외자' 상태여서 공·사적 연금 전반에서 사각지대가 심화하고 있다.

고용안정성이 가른 자산 격차…상용직 순자산, 임시·일용직의 2배 이상

고용 형태에 따른 소득과 저축 여력의 차이는 연금 가입의 문턱을 높이고 이것이 장기적인 자산 형성 격차로 직결되고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표한 '2026 근로자 가구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9915만원으로 임시·일용근로자 가구(2억3550만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금 유동성과 노후 투자 자산의 기반이 되는 금융자산 격차는 더욱 벌어져 상용근로자 가구의 금융자산(1억7447만원)이 임시·일용근로자 가구(6446만원)의 2.7배에 달했다.

소득과 저축 여력의 구조적 불균형도 심각하다. 상용근로자 가구의 연간 경상소득은 9519만원으로 임시·일용근로자 가구(4534만원)의 2.1배 수준이며 연간 저축 여력 역시 상용근로자 가구(3616원)가 임시·일용근로자 가구(1733만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고용 불안정에 노출된 임시·일용직 근로자일수록 연금이나 장기 투자 자산을 적립할 여력 자체가 부족해 노후 준비 경쟁에서 소외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남들은 은퇴한다는데"…74세까지 일하겠다는 사람들, 무슨 일[연금자산 양극화]① 원본보기 아이콘

이 같은 경제적 여건 차이는 은퇴 계획에도 극단적인 차이를 가져왔다. 수도권 상용근로자의 희망 은퇴연령은 65.9세인 반면 비수도권 임시·일용근로자의 희망 은퇴연령은 73.9세로 무려 8년가량 늦게까지 일터에 내몰려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 직후 다가온 '소득 절벽'…수령 방식마저 갈라놓은 자산 격차

가입 단계와 소득 여력의 격차는 은퇴 직후 나타나는 '소득 크레바스(은퇴 후 연금 개시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 구간과 최종 연금 인출 단계에서 가시화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정년퇴직 후 국민연금을 본격적으로 받기 전인 60~64세 연금 수급률은 44.4%에 불과하다. 이 연령대 절반 이상(55.6%)이 사실상 연금소득이 전혀 없는 '0원' 상태로 소득 공백기를 견디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는 인출 수령 단계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55세 이상 퇴직연금 인출자 중 연금을 분할 수령하는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억4891만원에 달한 반면 일시금으로 깨서 써버리는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833만원에 불과했다.

"남들은 은퇴한다는데"…74세까지 일하겠다는 사람들, 무슨 일[연금자산 양극화]① 원본보기 아이콘

자산 규모가 큰 근로자일수록 세제 혜택을 받으며 안정적인 월 생활비(연금)로 활용하는 반면 적립금이 적은 저소득·영세 근로자는 생활비나 부채 상환을 위해 일시금으로 소진해 버리면서 노후 소득 안전망이 무너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도인출에 따른 누수도 양극화의 한 요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주택 구입 등에 따른 중도인출과 이직 시 개인형퇴직연금(IRP) 해지 등 중도해지로 2024년 기준 17조2000억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노후 자금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유출됐다.


정승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연금은 가입·납입 단계부터 자산의 운용, 은퇴 후 인출·수령 단계까지 장기간 개인별 격차가 누적될 수 있어 다른 금융시장에 비해 양극화의 영향이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시장"이라며 "연금 자산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취약 계층의 연금 가입을 확대하고 납입을 지속하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D

영주닐슨 성균관대 교수(한국퇴직연금데이터 대표)는 "소득이 적으면 적립금도 적고 생활이 어려워 중간에 찾아 쓰면 장기투자의 기회까지 잃게 된다. 근로 시기의 소득 격차가 노후에는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는 구조"라며 "해법은 가입 지원, 적립 지원, 중도인출 예방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