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원가 1만5000원 크림이 35만원"…묘하게 딱 맞아 떨어지는 '손익분기점'
[헐값에 팔리는 한국여행]②관광객 발 묶는 '쇼핑 인질극'
21명 관광단 쇼핑 수수료 130만원
행사비 부족 中 송출사에 송객비 역지급
화장품 판매가 60~70% 수수료로
인솔자 보수도 쇼핑 실적에 연동
현장에서는 여전히 수수료 의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한 국내 여행사가 오히려 중국 여행사에 돈을 지급한다. 관광객 1명당 2만~4만원씩 건네는 이른바 '마이너스 투어피(Minus Tour Fee)'다. 숙박·식사·교통비까지 부담하는 국내 여행사는 쇼핑 수수료로 비용을 충당한다. 관광객이 물건을 사지 않으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초저가 한국여행의 이면에는 여행경비를 관광객의 쇼핑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거래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외국인관광객보호센터 이사가 제공한 화장품 실물 사진(아래)과 해당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가격 화면(위). 온라인 사이트에는 관련 제품이 35만~83만원에 등록돼 있다. 제품명과 브랜드명은 가림 처리했다. 외국인관광객보호센터·온라인 판매 사이트 갈무리
아시아경제가 확보한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의 정산자료에서도 이런 실태가 확인됐다. 지난 5월 21~23일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 21명의 화장품 구매액은 186만원이었다. 인삼 관련 상품은 2개 팔렸고, 헛개 관련 상품은 판매되지 않았다. 국내 여행사가 받은 쇼핑 수수료는 130만원으로, 관광객 1명당 약 6만1900원에 그쳤다.
이 관광단의 숙박·식사·차량 등 지상행사비는 1인당 14만~15만원, 총 294만~315만원으로 추산된다. 쇼핑 수수료만으로는 행사비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했다.
별도 정산자료에는 관광객 15명이 1인당 350위안의 유료 선택관광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됐다. 수수료와 경비를 제외하고 회사에 배분된 금액은 42만4000원. 쇼핑 수수료를 합친 수입은 172만4000원으로, 추산 행사비보다 121만6000~142만6000원 부족했다. 중국 송출업체와의 별도 정산 여부에 따라 최종 손익은 달라질 수 있다.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2026년 5월 중국인 단체관광 정산서(왼쪽)와 실제 적용된 인솔자 수수료 지급기준(오른쪽). 관광객 21명의 쇼핑 수수료 수입은 약 130만원이었으며, 수수료표에는 쇼핑·선택관광 실적에 따른 성과급과 비협조 시 추가 수수료 미지급 조건이 명시돼 있다. 업체명과 개인 식별정보는 가림 처리했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150달러 받던 지상비가 0원…이젠 송객비까지 역지급
마이너스 투어피는 중국 송출여행사와 국내 접객여행사 간 과열 경쟁에서 비롯됐다. 과거에는 중국 여행사가 관광객을 모집하면 국내 업체에 숙박·교통·식사비 등 지상행사비를 지급했다.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지상비를 받지 않는 '제로피(Zero Fee)'를 넘어 국내 여행사가 송객 대가로 돈까지 지급하는 거래가 등장했다.
중국 송출과 국내 접객 업무를 모두 경험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과거 관광객 1명당 150달러를 받던 지상비가 100달러, 50달러, 30달러로 내려가더니 결국 0원이 됐다"며 "지금은 국내 여행사가 중국 송출업체에 1명당 2만~4만원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거래에서는 중국 송출업체가 관광객을 모집하고, 국내 여행사는 송객비와 숙박·교통·식사비를 부담한 뒤 쇼핑센터에서 받는 판매 수수료로 비용을 회수한다. 관광객을 많이 유치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지는 역설도 발생한다. 업계 관계자가 제시한 원가를 토대로 30명 단체를 가정하면 국내 행사비는 420만~450만원이다. 여기에 1인당 4만원의 송객비를 더하면 총비용은 540만~570만원으로 불어난다.
여행사에 최종 귀속되는 쇼핑 수수료를 판매액의 50%로 가정하면 비용 회수에 필요한 쇼핑 매출은 1080만~1140만원에 달한다. 관광객 1명당 36만~38만원어치를 구매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는 계산이다. 여행상품 판매보다 쇼핑 실적이 수익을 좌우한다.
2026년 5월 21~23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21명의 실제 쇼핑 수수료 수입은 130만원으로, 1인당 14만원을 적용한 추산 지상행사비 294만원의 44.2%에 그쳤다. 함께 확보한 중국어 인솔자 수수료표에는 화장품 매출액의 3%, 선택관광 판매액의 10% 등 실적에 따른 보수와 쇼핑·선택관광 비협조 시 추가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자료 =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 정산서 및 인솔자 수수료표
원본보기 아이콘화장품 팔면 3%…인솔자 보수도 쇼핑 실적에 연동
쇼핑 수수료는 관광객을 인솔하는 인력의 보수와도 직결된다.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중국어 수수료 지급기준에는 화장품 판매액의 3%, 유료 선택관광 판매액의 10%를 인솔자에게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인삼류는 기본 수수료 5000원에 판매 실적에 따른 추가 보상이 붙는다.
'쇼핑과 선택관광에 협조하지 않는 인솔자에게는 추가 수수료와 선택관광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담겼다. 관광객의 구매를 적극적으로 유도할수록 인솔자 수입이 늘어나는 방식이다.
사후면세점에서 관광객에게 제공한 'TAX REFUND' 표시 쇼핑카드에는 가이드 이름과 식별번호 등이 적혀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관광객에게는 부가세 환급에 필요한 카드로 안내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사와 가이드별 쇼핑 실적을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쇼핑센터가 지급하는 수수료도 상당하다. 업계에 따르면 인삼·건강식품은 판매액의 약 50%, 화장품은 65~75%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사례가 있다. 이는 쇼핑센터가 지급하는 전체 수수료율로, 이 돈은 국내 여행사와 가이드, 중국인 인솔자 등에게 나뉘어 돌아간다.
김진오 외국인관광객보호센터 이사는 "일부 쇼핑센터의 수수료율은 60~65%이며, 70%를 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자체 조사 결과 포장비를 포함한 제조원가가 약 1만5000원인 화장품이 쇼핑센터에서 32만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아시아경제가 확보한 해당 제품의 납품 견적서에는 5000개 발주 기준 개당 1만4660원(부가세 별도)으로 명시돼 있다. 이 사후면세점은 운영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를 통해 제조사에 생산을 맡기고, 해당 제품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구조다. 같은 크림은 온라인에서 35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외국인 단체관광객에게 사후면세점에서 제공한 'TAX REFUND' 표시 쇼핑카드. 여행사와 방문시간, 가이드, 판매직원 등을 식별하는 정보가 기재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광객에게 부가세 환급용으로 안내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사·가이드별 쇼핑 실적을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정부 제재에도 쇼핑 의존 여전…피해는 관광객 몫
이 같은 거래 관행은 중국에서도 적발됐다. 2018년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한 쿤밍 경찰 수사에서는 현지 여행사가 관광객 1명당 100~500위안을 송출업체에 지급하고, 쇼핑점 매출의 30~90%를 수수료로 돌려받는 방식이 드러났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도 2024년 '방한 중국 단체관광시장의 공정 환경 조성방안'에서 덤핑 거래와 쇼핑 수수료를 통한 손실 보전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정부도 제재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5월 쇼핑 강요 등으로 적발된 중국 전담여행사에 처음으로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같은 해 7월에는 업무지침을 개정해 제로피 투어와 쇼핑 강요, 관광통역안내사 비용 미지급 등을 제재 유형에 포함했다.
관광객의 소비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의 쇼핑 참여 비중은 2019년 95.1%에서 2023년 68.2%로 낮아졌다. 개별관광과 자율 소비가 확대되는 추세에도 일부 저가 단체관광은 여전히 지정 쇼핑센터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
정지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기본 여행대금으로 필수 서비스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면서 쇼핑 부진에 대비할 자금도 확보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랜드사의 수입 부족이 가이드 보수 삭감이나 차량·숙박업체의 대금 지급 지연으로 이어지고, 결국 관광객이 서비스 중단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싼 여행의 적자를 강요된 쇼핑과 가이드의 희생으로 메운다면 할인보다 비용 전가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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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1인당 100만원씩 쓰고 오네"…'가성비로 간다'더니 지갑 활짝 일본행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내 화장품 전문 사후면세점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화장품 판매액의 65~75%를 여행사와 가이드 등에 수수료로 지급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독자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지난 14일 서울 동대문에서 중국인 관광객 60여명이 3시간 넘게 발이 묶인 사건도 이런 구조와 맞닿아 있다. 국내 여행사는 중국 송출업체의 지상행사비 미지급과 쇼핑 실적 부진을 이유로 버스 운행을 중단했다. 중국 측이 밀린 지상행사비 2만7500위안을 송금한 뒤에야 일정이 재개됐다. 관광객들은 중국에서 이미 여행대금을 지불한 상태였다. 여행사 간 비용 정산 문제가 관광 일정 중단으로 이어지면서 초저가 여행의 사업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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