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 주사 꽂았더니 반대편 암까지 녹아내려"…'생존율 30%' 난치암 뚫어낸 반전[과학을읽다]
유전자 회로로 연골육종 세포에 면역 표적 생성…면역억제 인자도 차단
인간 면역세포 이식한 생쥐서 원격 종양 축소…전이암 치료 가능성 제시
면역세포가 공격할 표적이 부족해 기존 면역치료가 잘 듣지 않던 난치성 암을 치료할 새로운 방법이 제시됐다. 암세포가 스스로 면역세포의 공격 표적이 되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유도하고,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까지 차단하는 방식이다. 동물실험에서는 치료제를 직접 투여하지 않은 다른 부위의 종양까지 줄어드는 효과가 관찰됐다.
서울대학교는 생명과학부 김진홍 교수 연구팀이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김이준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밍루 우(Ming-Ru Wu)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연골육종을 겨냥한 새로운 면역치료 기술을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골육종은 연골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항암제와 방사선치료에 대한 반응이 제한적이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 주요 치료법이지만,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에는 치료 선택지가 많지 않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러한 환자의 10년 생존율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암 치료에 활용되는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 등 면역치료도 연골육종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구별해 공격할 수 있는 표적 항원이 부족한 데다, 종양 주변에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환경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암세포에 공격 표적 만들고 면역억제까지 차단
연구팀은 암세포에서 기존 표적을 찾아내는 대신 암세포가 직접 면역세포의 공격 표적을 만들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를 위해 연골육종 세포의 유전자 발현 특성을 분석하고,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인공 유전자 회로를 설계했다.
핵심은 'AND 게이트'라는 논리 구조다. 연구팀은 대규모 탐색을 통해 EGR1과 KLF13에 반응하는 두 종류의 프로모터를 찾아냈다. 프로모터는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DNA 영역이다. 두 프로모터가 동시에 활성화될 때만 치료 유전자가 작동하도록 설계해 암세포에서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합성 단백질인 'T세포 인게이저'가 만들어지도록 했다.
면역세포가 공격할 대상을 찾기 어려웠던 암세포에 새로운 공격 표적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연구팀은 정상세포에서 치료 단백질이 발현되는 것을 억제하도록 회로를 설계했다.
여기에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도 함께 차단했다. 연구팀은 연골육종 환자의 조직을 분석해 면역억제 인자인 MIF가 종양의 악성도가 높을수록 많이 발현되고, MIF 발현량이 높은 환자일수록 생존율이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MIF를 차단하는 항체를 유전자 회로 치료제와 병용했다.
인간 면역세포를 이식한 생쥐에 두 치료제를 함께 투여한 결과 종양이 뚜렷하게 감소했다. 특히 생쥐의 양쪽에 종양을 이식한 뒤 한쪽에만 치료제를 주입했는데, 치료하지 않은 반대편 종양까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국소적으로 시행한 치료가 다른 부위의 종양에도 영향을 미치는 '원격효과'로, 전신적인 항암 면역반응이 유도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실제 전이암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연구가 동물실험 단계인 만큼 인체 적용을 위해서는 치료제 전달 방법과 정상조직에 대한 안전성, 장기적인 효과 등을 추가로 검증해야 한다.
김진홍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존 면역치료가 꽁꽁 숨어 있는 암세포를 찾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면역세포의 표적이 되도록 만든 것"이라며 "암에서 좋은 표적을 발견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표적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새로운 공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이준 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는 "육종은 면역세포가 거의 침투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차가운 종양'으로, 면역치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며 "췌장암, 교모세포종 등 다른 차가운 종양으로도 확장할 수 있어 면역치료의 대상 자체를 넓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이체 실패했는데 '띵동' 돈이 들어왔다"…토스뱅크서 터진 325억 금융 사고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트렌즈 인 바이오테크놀로지(Trends in Biotechnology)'에 게재됐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