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여성·성평등 입법
21대 국회 여가위 핵심 입법 198건
국회 문턱 못넘고 폐기 153건 달해
차별금지법 등 미완 과제 22대 재등장
심사→임기만료폐기→재발의 반복돼
악순환 끊으려면 분리심사 장치 필요
21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발의된 핵심 여성·성평등 의원입법 198건 가운데 153건(77.3%)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바뀌면서 법안은 폐기됐지만 해결되지 않은 입법과제는 22대 국회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23일 아시아경제가 21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원발의 법률안 가운데 젠더폭력·성착취·피해자 보호와 성평등·여성정책 관련 법안을 추려 분석한 결과 핵심 법안은 198건이었다. 일반 청소년·가족·돌봄·양육 정책과 단순 용어 정비 등 기술적 개정안은 제외했다. 이 가운데 임기만료폐기가 153건(77.3%)으로 가장 많았고 대안반영폐기 37건, 수정가결 4건, 철회 4건이었다.
문제는 임기만료로 법안이 사라져도 입법 필요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1대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가 22대에서 다시 발의된 사례가 잇따른다.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이 대표적이다. 정춘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관련 조사·연구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여성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하는 위안부피해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가위 소위까지 갔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올해 3월 위안부피해자법이 한 차례 개정됐지만 재단 설립은 포함되지 않았고, 지난 6월 전진숙 민주당 의원이 다시 관련 개정안을 냈다.
다른 상임위에서도 '심사→임기만료폐기→재발의'가 반복되고 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발의한 데이트폭력범죄 처벌·피해자보호법은 이듬해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로 넘어갔지만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김 의원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24년 7월 교제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특례법을 다시 발의했다. 이후 박정현·황정아 민주당 의원 등의 관련 법안도 뒤따랐다.
사회적 견해차가 큰 성평등 입법은 국회를 바꿔가며 논의가 이어지는 양상이 더욱 뚜렷하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2020년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약물과 수술을 임신중지 방법으로 규정했지만 세 차례 소위 상정 끝에 임기만료 폐기됐다. 22대에서는 이수진·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의 개정안이 다시 발의돼 복지위에서 심사 중이다. 정부도 지난달 임신중지 약물의 정식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약물 품목허가와 법 개정을 선후 관계로 둘 필요는 없다면서도 임신중지를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기 위한 형법·모자보건법 정비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21대 국회에서 장혜영(정의당)·이상민(민주당)·박주민(민주당)·권인숙(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평등법안 4건은 모두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22대 들어 손솔(진보당)·정춘생(조국혁신당) 의원이 다시 차별금지법안을 냈다. 용혜인(기본소득당)·장혜영(정의당) 의원이 21대에 각각 발의했다 폐기된 생활동반자법도 22대에서 다시 발의됐다.
22대 국회 후반기에는 이전 국회의 미완 과제를 다시 발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쟁점별로 처리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성평등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가장 큰 병목으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방식의 심사 관행"을 짚었다. 허 조사관은 "쟁점 조항 하나에 이견이 생기면 법안 전체가 캐비닛에 갇혀버리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이체 실패했는데 '띵동' 돈이 들어왔다"…토스뱅크서 터진 325억 금융 사고
이어 "국회가 바뀔 때마다 같은 법안을 '도장 찍듯' 다시 내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이전 국회에서 축적된 심사 기록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합의 가능한 시급한 민생·보호 조항은 먼저 떼어내 처리하고 첨예한 쟁점은 다음 논의 일정을 못 박아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분리 심사'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