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가 한창이다. 예측과 반전 속에 승패를 겨루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노래와 율동으로 선수와 팀을 응원하는 고유의 팬덤 문화는 한국 프로야구의 상징이 됐다. 루키가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같은 변화가 있긴 하지만, 사실 9회로 진행되는 경기의 룰은 고정이다. 응원가도 그대로다. 그럼에도 팬들은 다음 경기를 기다린다. 내가 좋아하는 구단과 선수들을 매 경기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 팀에 따라, 선수들의 활약과 부진에 따라, 경기 결과에 따라, 팬들은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한다. 지난 경기의 패배가 오늘의 승리를 더욱 짜릿하게 만들고, 오랫동안 지켜본 '내 선수'의 활약이 특별한 감동을 주며, 함께 부르는 응원가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추억을 쌓는다.
익숙한 플레이와 반복되는 시즌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는 스포츠 경기의 메커니즘은 콘텐츠산업에도 함의를 준다. 핵심은 지속성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 익숙한 콘텐츠를 새롭게 경험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동일한 캐릭터와 세계관도 다른 콘텐츠를 만나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를 어떻게 다시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만들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전제돼야 하는 것은 팬들의 '애착'이다. 야구팬들은 경기를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응원가를 부르고, 굿즈를 사고, 경기 장면을 해석하고, 밈을 만든다. 콘텐츠 팬들도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그 콘텐츠가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에 몰입하고, 경험하고, 자신의 해석을 더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콘텐츠IP의 생명력은 이렇게 팬덤과의 관계 속에서 확장된다.
이러한 관계는 콘텐츠가 다른 산업과 만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기반이 된다. 콘텐츠IP는 다른 산업과의 협력을 통해 더욱 넓어지고 다양해질 수 있다. 예컨대, 콘텐츠는 공간을 찾을 이유를 만들고, 공간은 콘텐츠 경험과 소통의 장이 된다. 최근 도쿄돔을 계열사로 둔 미쓰이부동산이 콘텐츠 기업과 함께 아이돌 육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업시설에 전용극장을 마련하고 콘텐츠를 연계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이 기업의 전략은 콘텐츠 입장에서도 유용하다. 팬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콘텐츠IP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체험과 상품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콘텐츠산업을 전망하며 제시했던 키워드 '콘텐츠IP 리그'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한 콘텐츠산업의 메커니즘을 담고 있다. 마치 스포츠 리그처럼, 여러 콘텐츠IP와 기업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팬덤의 경험을 연결하고 개별 콘텐츠의 성공을 지속적인 산업 성장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IP가 또 다른 콘텐츠로, 또 다른 산업으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필요하다. 관건은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하고 함께 성장하면서 그 성과를 공유하는 관계를 만드는 데 있다. 스포츠 리그에서 각 구단은 승리를 위해 경쟁하지만, 전략적 트레이드와 올스타전 같은 공동의 이벤트를 통해 팬들의 관심을 얻고 수익을 만들어 함께 성장한다. 콘텐츠IP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공동 기획과 사업화의 기회를 넓히고, 협업의 성과를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제작, 투자, 플랫폼, 유통, 제조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을 연결하면서 IP의 확장과 수익화를 모색하는 '한국형 제작위원회' 등의 논의와 시도가 갖는 의미는 크다.
팬들은 익숙한 팀을 응원하면서 새로운 시즌을 기다린다. 익숙함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 프로야구에서 배울 수 있는 콘텐츠산업의 성장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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