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밖 K은행의 민낯]②
5대 은행 해외 금융사고 32건 중 횡령 60%
ATM 조작해 자금 빼돌리고 감사 땐 장부 맞춰
위조 신용장에 외부인 공모까지…수법 다양

해외 금융사고가 벌어지는 과정을 취재하면서 드러난 것은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을 비집고 들어가는 다양한 수법이었다. 현지 직원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자금을 빼돌리는가 하면, 외부 거래처와 손잡고 수출 서류를 조작해 은행에서 거액을 편취한 사례도 있었다. 금융사고의 주범은 은행 안팎에 걸쳐 있었고, 수법도 단순 횡령에서 조직적인 사기 거래까지 다양했다.


ATM 자금 빼돌리고 가짜 수출 서류로 수백억 사기…해외 금융사고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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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해외 금융사고 32건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횡령으로, 19건에 달했다. 전체의 약 60%다. 사기가 9건으로 뒤를 이었고 업무상 배임 3건, 도난·피탈 1건 순이었다. 발생 건수는 횡령이 가장 많았지만 사고 규모는 사기가 압도적이었다. 사기 사고액은 총 1142억2500만원으로 전체 사고액의 88.8%를 차지했다. 업무상 배임이 96억9200만원, 횡령이 47억4900만원으로 뒤를 이었고 도난·피탈은 1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베트남 현지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금융사고는 현지 채용 직원이 가담한 횡령 사건이었다.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한 시중은행의 베트남 법인에서 현지 직원 한 명이 ATM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직원은 감사에 대비해 부족한 자금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 채워 넣고, 장부상 잔액을 맞추는 방식으로 횡령 사실을 감췄다. 횡령은 2년 넘게 이어졌다.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한 A은행 베트남 법인의 행원은 "베트남은 한국보다 감사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감사 때 부족한 자금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 채워 넣는 방식으로 횡령 사실을 숨겼다고 들었다"며 "한국인 지점장이 아닌 현지인 지점장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서는 2~3년마다 지점을 옮기는 것과 달리 베트남은 지방의 경우 인력을 자주 교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현지 채용 직원에게 장기간 업무 권한이 주어지면서 횡령이 오랜 기간 가능한 구조였던 셈이다.

해당 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다만 해당 은행 측은 사고 원인에 대한 일부 보도 내용에 이의를 제기했다. 은행 측은 "실제 확인된 사실관계와 달리 개인의 일탈 행위를 현지 채용 인력들의 조직적 일탈로 표현하고, 구체적인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여러 가능성을 사고 원인으로 제시하는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다.


외부 거래처가 사기 행각을 벌이는 공범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한 현지법인에서 발생한 거액의 사기 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해당 법인은 직원이 현지 중견 수출기업과 공모해 위조한 허위 수출대금지급보증서(신용장)에 속아 넘어가 1000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금융감독당국(OJK)은 해당 거래에 은행 내부 관계자가 연루됐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신용장 거래는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가 서로를 직접 신뢰하기 어려운 국제무역 거래 시 은행이 대금 지급을 보증하는 장치다. 다만 서류가 외관상 정상적으로 보이면 실제 물품이 선적됐는지, 서류에 적힌 물품과 컨테이너에 실린 물품이 일치하는지까지 확인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말한다. 미국에서 법인장을 지낸 전직 은행원은 "실제 컨테이너에 물건 대신 돌이나 벽돌이 들어 있어도 은행이 알 수가 없다"며 "어느 나라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현지법인에서 근무 중인 한 지점장 역시 "외환거래는 통상 국제금융통신망(SWIFT)을 통해 처리되지만,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서류 처리가 수기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를 악용한 금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해외 지점의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지 기관의 전산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다만 외부 수출업체가 수입업체와 짜고 단독으로 사기를 치거나 은행 직원까지 가담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수입업체 신용 및 거래 실체에 대한 심사와 승인, 내부통제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 대금결제 전문강사인 김영훈 교수(전 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신용장 거래에서 은행이 서류 심사만으로 사기를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신용장 거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담당자가 이런 허점을 악용해 심사 요건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등 부정거래에 가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현지 법인의 본점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캄보디아 정부 건물을 매입하려다 오히려 정부 측에 사기를 당한 황당한 사례였다.


사기는 대출 등 현지 영업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B은행 현지법인에서는 개인 대상 영업 과정에서 현지 플랫폼 업체에 사기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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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담당자가 실적을 우선시해 부실 가능성이 있는 대출을 유치해도, 본국 파견 직원이 현지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부실 대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일부 시중은행의 경우 중국 법인은 대출 영업 전담 직원을 현지에서 별도로 채용한다. 영업 직원이 대출 거래를 유치하면 본국에서 파견된 직원이 이를 최종 승인한다. 대출 실적은 곧바로 영업 직원의 성과급과 직결된다. C은행 중국 법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은행원은 "이 같은 영업 구조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적 위주의 영업 행태와 파견 직원의 현지 시장 파악 수준, 대출 절차가 맞물리면서 부실 가능성이 있는 거래를 걸러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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