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경제 종합성적표' 아냐
서비스업 진입·성장 막는 규제 개선
반도체 업황으로 늘어난 소득
가계 구매력·국내 투자 연결해야

최근 중국 경제에 대한 평가는 혁신산업의 눈부신 성과와 내수 침체·과잉설비에 대한 비판 사이에서 엇갈린다. 후자를 강조하는 이들은 부동산 침체와 부채 부담, 약한 소비, 고령화라는 공통점을 들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거론하기도 한다. 중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는 불확실하지만, 두 나라의 경험은 세계시장에서의 제조업 경쟁력과 국내 경제의 활력이 항상 함께 개선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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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기침체의 출발점은 1990년대 초 자산가격 거품의 붕괴였다. 자산가치는 급락했지만, 부채는 남았고 기업은 빚을 갚는 데 힘을 쏟으며 신규 투자를 줄였다. 소비와 투자가 약해지자 물가와 임금이 정체됐고, 수요가 늘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다시 투자를 위축시켰다.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 구조조정의 지연은 문제를 키웠다. 은행이 손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부실기업의 대출을 연장하면서 자금과 인력이 생산성이 낮은 기업에 묶였고, 좀비기업은 건전한 기업의 투자와 신규 진입까지 어렵게 했다. 고령화와 생산성 둔화도 겹쳤다.


2002~2008년에는 수출과 설비투자가 늘며 당시 전후 최장인 73개월 경기 확장이 이어졌다. 그러나 임금과 소비의 회복은 더뎌 '체감 없는 회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수출이 이끄는 경기 확장과 내수의 취약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비슷한 충격에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2021년 무렵 본격화한 부동산시장 조정은 가계의 자산가치와 소비심리를 약화시켰고, 지방정부 재정에도 부담을 줬다. 중국 정부는 제조업과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에 박차를 가해 성장의 빈자리를 메우려 했고, 실제로 전기차와 배터리의 경쟁력 향상에는 이런 투자가 한몫했다. 하지만 가계의 구매력 회복이 좀처럼 따르지 않으면서, 중국이 내수 부진의 부담을 해외로 떠넘긴다는 비판과 과잉설비 논란도 커졌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양보다 많이 생산한다는 이유만으로 과잉설비라고 할 수는 없다. 세계시장의 수요를 겨냥한 전문화는 무역의 기본이다. 중국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보조금과 우대금융, 지방정부의 중복투자가 수익성을 충분히 따지지 않는 증설을 부추기고, 손실이 나는 기업의 퇴출을 늦추고 있는지에 있다. 기술혁신의 성과와 자원배분의 비효율은 한 산업 안에서도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난해 상품무역흑자는 1조1890억 달러로, 1조 달러를 처음 넘었고, 올해도 9월까지 9381억 달러에 이른다. 수출은 부동산 침체의 충격을 일부 흡수했지만, 약해진 내수를 충분히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자물가는 41개월 연속 하락하다 올해 3월 상승으로 돌아섰으나, 여기에는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이 크게 작용했다. 9월 생산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5.0% 오르는 동안 소비자물가는 0.9% 오르는 데 그쳤다. 중국처럼 큰 경제가 내수 부진을 해외 수요로 메우려 할수록 교역상대국의 반발이 커져 한계에 부딪힌다.


두 나라의 경험이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경상수지 흑자를 경제의 종합성적표로 읽어서는 안 된다. 경상수지는 국가의 손익계산서가 아니다. 흑자는 나라 전체의 저축이 국내 투자를 웃돈다는 뜻이고, 그 차이는 해외자산 축적으로 이어진다. 흑자는 수출경쟁력이 높아서 늘어나기도 하지만,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이 국내 투자를 주저해도 커진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의 총저축률은 45.6%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지만, 국내총투자율은 24.2%였다. 늘어난 소득에 비해 국내 소비와 투자가 확대되는 속도는 더뎠다.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9월 말 해외 투자은행 8곳의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흑자 전망은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17.5%다. 종전 최고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10.1%(IMF 기준)였다. 당시 흑자는 내수가 무너져 수입액이 3분의 1 넘게 줄어든 결과였고, 올해는 AI 수요와 반도체 가격 상승이라는 긍정적 충격이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충격이 내수의 선순환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1년 전보다 15.6% 늘었지만,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5.5%, 민간소비는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명목 총 영업잉여는 48.2% 늘었지만, 피용자보수는 8.1% 증가했다.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는 데는 시차와 제약이 있다는 뜻이다.



[산업의 맥]수출 호황은 저절로 내수로 이어지지 않는다 원본보기 아이콘

기업 이익이 성과급과 배당, 세수를 거쳐 가계로 전달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반도체처럼 자본과 기술에 집약된 산업에서는 생산 증가가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폭도 제한적이다. 내수기업은 소비가 약하면 투자를 미루고, 투자와 고용이 늘지 않으면 가계소득의 회복도 더뎌진다. 소득이 늘더라도 부채가 많은 가구는 원리금 상환이, 무주택 가구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이 먼저다. 일본과 중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도 문제지만 높은 집값도 소비를 위축시킨다. 정책은 집값의 급등락을 경계하면서 임대료와 원리금 상환액 등 실제 주거비 부담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둘째, 산업정책은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면서 자원이 부실기업에 묶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에 못 미친 한계기업의 비중은 2024년 말 17.1%에서 지난해 말 19.1%로 높아졌다. 한은은 올해 이 비중이 작아지겠지만 업황 부진 업종의 취약성은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구조조정 지원은 부실기업의 연명보다 일자리를 옮겨야 하는 근로자의 재취업과 소득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늘어난 소득이 국내에서 쓰이고 투자될 통로를 넓혀야 한다. 서비스업의 진입과 성장을 막는 규제를 고치고, 인공지능(AI) 활용이 반도체 수출을 넘어 내수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서비스 개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세수 증가분을 돌봄 등 생활 서비스의 공급 기반을 넓히는 데 쓸 필요도 있다. 가계가 미래 지출을 걱정해 과도하게 저축할 필요를 줄이는 것도 내수 기반을 키우는 방법이다.


일본과 중국의 경험은 수출산업의 성과가 부채와 내수, 자원배분의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을 가계의 구매력과 생산적인 국내 투자로 연결해야 한국 경제가 정말로 달라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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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맥]수출 호황은 저절로 내수로 이어지지 않는다 원본보기 아이콘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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