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4년간 ‘니벨룽의 반지’ 공연
쓰레기로 만든 니벨하임·현금 뒤덮인 발할라
사무엘 윤·양준모·이상민·임세경 등 출연
니벨룽족 난쟁이 알베리히가 라인의 황금을 훔쳐 절대 권력을 지닌 반지를 만든다. 하지만 신들의 왕 보탄에게 반지를 빼앗기고 알베리히는 반지를 가진 자는 파멸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의 황금'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알베리히와 보탄은 모두 황금과 권력을 좇는 인물들이다. 알베리히는 라인의 처녀들에게 구애했다가 거절당하자 사랑을 포기하고 황금을 훔쳐 권력을 손에 넣는다. 보탄은 거인 형제 파졸트와 파프너에게 발할라 성을 짓게 한 뒤 그 대가를 마련하기 위해 알베리히의 반지를 빼앗는다.
국립오페라단이 '라인의 황금'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냉소적 시선으로 재해석해 오는 29일부터 11월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알베리히가 지배하는 지하세계 '니벨하임'은 동굴 대신 상자와 포장재, 쓰레기가 빌딩숲처럼 증식한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로 표현된다. 신들의 세계인 발할라 성에서는 거인족과의 계약과 탐욕의 대가를 상징하듯 현금 뭉치가 무대를 뒤덮는다. 라이브 카메라는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대형 화면에 실시간으로 투사해 인물들의 권력과 욕망의 민낯을 관객이 가까이 들여다보게 하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라인의 황금'은 바그너가 북유럽 신화와 게르만 서사시를 바탕으로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의 서막을 여는 첫 작품이다. 이후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진다. 4부작 전체 연주시간만 16시간이 넘는다.
'니벨룽의 반지'는 절대 권력을 지닌 반지와 저주, 이를 둘러싼 탐욕이라는 설정 때문에 영화로도 유명한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과 자주 비교된다. 전문가들은 톨킨이 니벨룽의 반지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지만 톨킨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2029년까지 4년에 걸쳐 사랑과 권력, 탐욕과 저주의 기원을 다루는 '니벨룽의 반지' 전막을 공연하는 '링 사이클'에 나선다.
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라인의 황금'에는 국내외 바그너 전문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한다. 신들의 왕 보탄 역은 베이스바리톤 올렉산드르 푸슈냐크와 바리톤 이상민이 나눠 맡는다. 난쟁이 알베리히 역에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바리톤 양준모가 더블 캐스팅됐다. 젊음과 미의 여신 프라이아 역은 소프라노 다니엘라 쾰러와 임세경이 맡는다.
프라이아는 애초 보탄이 파졸트와 파프너 형제에게 발할라 성을 짓는 대가로 넘겨주기로 약속한 인물이다. 하지만 프라이아가 사라지면 신들도 늙고 쇠약해질 수밖에 없어 다른 신들이 반발한다. 이에 보탄은 프라이아를 되찾기 위해 알베리히에게서 황금과 반지를 빼앗는다. 우여곡절 끝에 반지는 파졸트와 파프너 형제에게 넘어가지만, 알베리히의 저주가 현실이 되면서 파프너가 파졸트를 죽이는 비극이 벌어진다.
보탄의 아내 프리카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김선정과 양송미, 보탄과 함께 알베리히의 황금과 반지를 빼앗는 불의 신 로게 역에는 테너 조너선 스토턴과 김요한이 출연한다. 강도호, 이재명, 최범석, 이단비, 류지상, 김대영 등도 무대에 오른다.
연출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서 기발한 상상력과 빼어난 감각으로 호평받은 로렌조 피오로니가 맡는다. 피오로니는 바그너의 신화를 현대사회를 들여다보는 '돋보기'로 삼아 부동산과 대출, 계약, 노동 착취, 젊음에 대한 집착 등 오늘날의 욕망을 현대적 이미지로 풀어낼 계획이다. 또한 무겁고 장중한 고전의 틀에서도 벗어나 바그너 음악에 담긴 위트와 블랙코미디를 살리고, 권력을 둘러싼 신들의 관계에는 '패밀리 드라마', 반지를 빼앗고 빼앗기는 갈등에는 '갱스터 드라마'의 문법을 적용한다.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를 지휘했던 로타 쾨닉스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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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니벨룽의 반지'에 대한 국립오페라단의 도전은 유례에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며 "국내 오페라 역사상 처음으로 4부작을 직접 제작해 4년간 무대에 올리는 만큼 매 작품마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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