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거대한 생명체 뱃속을 성장의 관문으로
시각적 성취 뚜렷하나 잦은 회상이 긴장 끊어

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는 거대한 고래의 몸속에 인간의 사투를 가두는 새로운 공간적 시도를 선보인다. 밀실 공포와 생존 스릴러가 지닌 원초적 매력을 내세워 생사의 경계에 선 인간의 본능을 들여다본다.


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 컷.

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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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밋(조시 브롤린)의 유해를 찾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제이(오스틴 에이브람스)는 심해에서 거센 물살에 휩쓸린다. 무게 60t, 길이 24m에 달하는 향유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산소 고갈까지 남은 시간은 60분. 구조가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시각적 성취는 부정하기 어렵다. 360도 회전 세트와 수중 촬영, 시각특수효과(VFX)로 구현한 고래 내부가 끈적이는 점액과 소화액, 미지의 생물학적 공포로 긴장을 유발한다. 거대한 생명체의 식도를 거슬러 오르는 액션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제이가 생존에 집중하면서 드러내는 에너지가 극을 힘 있게 끌고 간다.


하지만 이런 장르적 가능성은 낡고 평면적인 가족주의와 맞물리면서 한풀 꺾인다. 절박한 상황과 과거의 가족사가 자주 교차하면서 극의 흐름이 번번이 끊긴다. 제이가 산소통의 잔량을 확인하며 절망하는 순간, 억압적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회상으로 나타나는 식이다. 시간의 압박이라는 장르의 동력을 약화하는 동시에 극의 리듬을 끊어 몰입을 방해한다. 서사를 둔하게 만들고, 블록버스터가 줄 수 있는 아드레날린도 떨어뜨린다.

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 컷.

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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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백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아버지와의 기억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과거 장면은 대부분 인물의 상처를 설명하는 데 머문다. 현재의 선택으로 좀처럼 이어지지 못해 탈출을 늦추는 막간이 되고 만다.


사실 브라이언 더필드 감독이 이렇게 회상을 고집한 이유는 있다. 제목인 '웨일폴'은 죽은 고래가 해저로 가라앉는 '고래 낙하(whale fall)'를 뜻한다. 사체는 심해 생물의 먹이가 되고, 뼈만 남은 뒤에도 길게는 100년 가까이 생태계를 떠받친다. 한 생명의 죽음이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생명을 기르는 셈이다. 영화는 여기에 아버지를 겹쳐, 아들이 나아갈 길을 밝힌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거대한 생명체의 뱃속을 성장의 관문으로 삼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웅이 옛 자아를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관문은 고래의 뱃속이다. 죽음과 재생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구약성경에서 요나도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보낸 뒤에야 자신에게 맡겨진 길로 나아간다. 제이가 고래의 몸속을 통과하는 여정 역시 아버지의 그늘을 지나 성장하는 통과의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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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 컷.

영화 '웨일폴: 고래에 먹힌 남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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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의도를 화면에 옮기는 방식이다. 제이와 밋의 대립은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수없이 반복해온 전형에서 한 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뚝뚝하고 강압적인 가장, 그로 인해 상처받은 자식, 목숨이 오가는 위기 속에서 비로소 깨닫는 가족애라는 공식은 지나치게 안일하다. 오랜 앙금도 인물의 내면을 깊이 다루기보다 전형적인 대사 몇 마디로 풀린다. 해부학적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돌연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모습은 생존 의지마저 흐린다. 고래의 죽음이 심해의 양분이 되기까지 긴 세월이 걸리듯, 애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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