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DN오토모티브 노동자들의 혈중 납 수치를 낮추기 위해 킬레이션 주사를 투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직접 처벌하기 어렵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작업환경 개선 없이 건강진단 수치만 낮춰 산업안전보건 제도를 무력화하는 행위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류현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안은 작업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노동자들의 혈중 납 수치만 낮추려는 대단히 왜곡된 기업의 행태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류 본부장은 "수십년간 사업장 보건관리의 중심이 돼 온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제도의 취지를 몰각했다는 측면에서 기업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에서 킬레이션과 같이 산업안전보건 제도를 무력화하는 행위를 제재하는 법률이 논의된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킬레이션은 약물을 투여해 체내 중금속을 배출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DN오토모티브는 특수건강진단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혈중 납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킬레이션 주사를 부당하게 투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 TF가 주최한 11월 정기국회 산업안전 입법 추진과제 발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법상 킬레이션 자체를 직접 규율하지 않는 만큼 주사 투여 행위만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류 본부장은 "킬레이션 주사를 통해 사전에 혈액 노출 수준을 떨어뜨리는 문제에 대해 산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킬레이션 과정에서 다른 법률을 위반했을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8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류 본부장은 "행정조사만으로 관련 기관과 기업의 공모 여부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며 경찰에 관련 정황과 자료를 제출하는 등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기업에 공모하는 기관이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보겠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앞서 DN오토모티브 울산공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68건을 적발해 입건·송치하고 과태료 4620만원을 부과했다. 납 노출 공정에는 설비 사용중지 명령을 내렸으며, 부실 측정이 확인된 작업환경측정기관에는 업무정지 처분을 했다. DN오토모티브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도 경찰에 수사 의뢰됐다.
노동부는 배터리 제조 관련 사업장 14곳으로 기획감독을 확대했으며, 고위험 사업장으로 분류된 전국 납 취급 사업장 150여곳도 감독할 계획이다. 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한 임시건강진단 명령과 안전보건진단도 추진하고 있다.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역학조사와 개선 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는 별도로 검토한다. 노동부는 단순히 혈중 납 노출 수치만으로 직업병을 단정할 수 없는 만큼 개별 노동자의 건강진단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대응 과정에서 노사 간 협의와 조율이 지연된 데 대해서도 유감을 나타냈다. 류 본부장은 "노사 간 협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전문가 참여나 일정 조정 등을 도모했어야 하는데 지체된 바 있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은퇴하면 즐겨야지" 가격 4배 '껑충'…1억 넘는 회원권 인기인데 문 닫는 곳도 속출
그는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고 해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신속한 절차 진행과 노사 간 합의 도출을 지원하는 것도 부처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넘어 화학물질을 포함한 산업현장 보건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