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 롯데콘서트홀 독주회
쇼팽 원곡·자작곡 잇달아 연주
"19세기까지 음악가가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쇼팽도, 리스트도 연주와 작곡을 병행했다. 그런 음악가의 모습을 21세기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되찾고 싶다."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하고도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스미노 하야토는 서면 인터뷰에서 앞으로 연주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입지를 다지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스미노는 도쿄대 공대를 졸업한 뒤 대학원 석사 1학년 과정을 밟던 2018년 전일본피아노지도자협회(PTNA)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공학도가 아닌 연주자로서의 삶을 택했다. 피아노 강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장난감 삼아 성장했다. 2021년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3차 본선까지 오르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피아노 잘 치는 공대 오빠' 스미노가 오는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한다. 그는 2022년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열었다. 매진이었다. 이듬해부터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오가며 매년 독주회를 열어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쌓아가고 있다.
"쇼팽은 음악 인생의 중심축"…'흑건'·'에올리언 하프'서 영감 얻은 자작곡 연주
쇼팽 콩쿠르 참가자들은 다른 콩쿠르와 달리 오로지 쇼팽의 곡만 연주해야 한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내내 쇼팽에 몰두해야 하는 만큼 대회가 끝난 뒤 한동안 쇼팽이 지겹다며 쇼팽을 연주하지 않는 연주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스미노는 2022년 첫 내한 독주회 당시 1부를 쇼팽의 곡으로만 채웠다. 이후 3년간 내한 독주회에서는 쇼팽을 연주하지 않았고, 올해 4년 만에 다시 쇼팽을 꺼내 든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마지막 곡인 라벨의 '라 발스'를 제외하면 이번 프로그램의 모든 곡이 쇼팽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쇼팽에서 잠시 멀어졌다가 되돌아온듯한 스미노가 택한 이번 공연의 제목은 '쇼팽 오비트(Chopin Orbit)'다. 그는 "쇼팽의 음악은 가까워졌다가 때로는 조금 멀어지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제 음악 인생의 중심축이 되어왔다"며 "쇼팽을 하나의 중력의 중심에 두고, 그로부터 태어난 여러 음악적 반응과 갈래들이 저마다의 궤도를 그려 나가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스미노가 2022년 첫 내한 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연주한 곡이 있다. 자작곡 '태동(New Birth)'이다. 쇼팽의 '에튀드 1번'(Op.10-1)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태동'을 연주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태동' 외에도 쇼팽에서 출발한 자작곡을 여럿 들려준다. 쇼팽의 '에튀드 5번 흑건'(Op.10-5)에서 영감을 받은 자작곡 '백건'과 '에튀드 13번 에올리언 하프'(Op.25-1)에서 파생된 '리디안 하프'를 연주한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재해석한 '빗방울 후주곡'도 들려준다. 특히 '에올리언 하프'와 '리디안 하프', '흑건'과 '백건'을 잇달아 배치해 쇼팽의 원곡과 자신의 자작곡을 곧바로 비교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스미노가 지난 1월 소니 클래시컬에서 발매한 앨범 제목도 '쇼팽 오비트'였다. 그는 이 앨범에 대해 "쇼팽과 정면으로 마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쇼팽 특유의 음악적 어법과 미의식이 자연스럽게 제 안에 스며들었고, 어느 순간 제가 쓰는 음악에도 그것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스미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쇼팽의 미의식을 이어가면서도 그 안에 제 자신의 현대적인 감각과 창의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라며 "쇼팽의 음악이 오래된 작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롭게 태어난 음악처럼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문화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경복궁 정원·색채에서 깊은 영감"
스미노는 과거 인터뷰에서 음악가들의 자서전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다른 음악가들의 생각을 엿보고 배울 수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큰 영감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2024년 타계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 대해서는 "몇 번을 읽어도 여전히 영감을 주는 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국의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이노의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노가 제시한 '축 사고(Axis Thinking)'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스미노는 "사물을 양자택일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다차원적으로 바라보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농도가 다른 회색이 있듯이 현실의 대부분의 일도 두 가지 선택지만으로 나눌 수는 없다. 음악을 예로 들면 작곡과 즉흥 연주는 서로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무수히 다양한 형태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축만이 아니라 여러 축을 조합하거나, 평소 당연하게 여기는 선택의 반대편을 일부러 생각해 보면 그동안 선택지로 인식하지 못했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발상은 그렇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저 자신이 막연하게 해오던 일을 명확한 언어로 설명해 준 것 같아서 읽으며 기뻤다"며 "이노가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생성 음악(Generative Music)', 즉 오늘날의 인공지능(AI) 음악과 통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도 놀라웠다"고 밝혔다.
스미노는 앞으로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처럼 보다 큰 편성의 곡에도 조금씩 도전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는 작곡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매년 독주회를 열며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문화와 언어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은 저에게 소중한 곳"이라며 "한국 관객들은 무척 열정적이고 음악을 통한 교감을 소중히 여겨주신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번 제 음악에서 무언가를 느껴주신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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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경복궁을 주제로 한 곡을 작곡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몇 달 전 경복궁을 방문했는데 정원의 아름다움과 색채 감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직 구체적인 작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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