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스카우트도 볼 곳 없는 현장
타순·수비위치 증발한 부실 전광판
허술한 구장에 행인 위협하는 파울공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는 한국 야구의 뿌리이자 오랜 107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국체육대회 고교야구 현장에 국내 프로구단 및 미국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이 선수를 관찰할 최소한의 자리와 공간조차 갖추지 못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선수들의 부상을 유발하는 인조 잔디 타석과 행인을 위협하는 장외 파울 타구, 기본 정보조차 빠진 부실 전광판까지 겹치며 개최지 제주특별자치도의 허술한 전국체전 준비 실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7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고교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정식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흙 없는 미끄러운 인조잔디 타석’에 들어서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 박창원 기자.

17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고교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정식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흙 없는 미끄러운 인조잔디 타석’에 들어서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 박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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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제107회 전국체전 고교야구 경기가 열린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는 차세대 한국 야구를 이끌 고교 유망주들의 기량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KBO 리그 구단과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야구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현장을 찾은 국내외 스카우트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작 선수들의 플레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데이터를 기록할 스카우트 석이나 변변한 관람 공간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구 종목 특성상 스카우트들은 홈플레이트 뒤편 중앙 좌석에서 스피드건과 비디오 장비, 기록지를 놓고 투수의 구속과 구위, 타자의 타격 메커니즘을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관람석과 분석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해외 스카우트들까지 구장 주변을 전전하며 선수를 지켜봐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구장 전광판은 스카우트들과 관중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못했다. 전광판에는 투수의 구속을 띄우는 표시창은 물론 양 팀의 전체 타순(라인업)과 수비 위치를 알리는 공간 자체가 없었으며, 그나마 마련된 '현재 타자'와 '다음 타자' 칸은 내내 빈칸으로 방치됐다.


프로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까지 온 전국 최대 권위의 대회에서 선수 볼 자리 하나 없고 연습경기나 겨우 할 수 있는 구장에서 고교 최고의 대회를 치르고 있어 한국 야구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세계적 창피"라고 개탄했다.

17일 제107회 전국체육대회 고교야구 경기가 진행된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 전광판 모습. 전체 타순과 수비 위치, 투수 구속을 표시하는 공간 자체가 없으며, 그나마 마련된 ‘현재타자’와 ‘다음타자’ 칸은 빈칸으로 방치돼 있고 볼·스트라이크·아웃(B·S·O) 카운트 램프마저 모두 꺼져 있다.

17일 제107회 전국체육대회 고교야구 경기가 진행된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 전광판 모습. 전체 타순과 수비 위치, 투수 구속을 표시하는 공간 자체가 없으며, 그나마 마련된 ‘현재타자’와 ‘다음타자’ 칸은 빈칸으로 방치돼 있고 볼·스트라이크·아웃(B·S·O) 카운트 램프마저 모두 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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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안의 시설 여건은 선수들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투수 마운드는 흙으로 조성돼 있었으나, 정작 타자들이 폭발적인 회전력을 실어 스윙하고 타격 직후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 타석은 흙이 아닌 인조 잔디로 덮여 있었다.


고교야구 정식 구장에서 타석은 스파이크가 밀리지 않도록 반드시 흙으로 다져져 있어야 한다.


현장의 한 출전팀 코치진은 "타석이 인조 잔디로 돼 있어 타격할 때 발이 미끄러지고 하체 고정이 전혀 안 된다"며 "정상적인 기량 발휘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자칫 발목이나 무릎이 꺾이는 대형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구장 밖 안전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파울 라인을 따라 안전망이 설치돼 있지만, 높이가 턱없이 낮아, 고교 선수들이 때려낸 파울 타구가 그물망을 훌쩍 넘겨 인근 육상경기장과 도로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한 경기당 평균 5~6개의 타구가 구장 밖으로 넘어가면서 주변을 지나는 행인과 주행 중인 차량을 위협하는 아찔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데, 누군가 다치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취재 결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대회 전 현장 실사 과정에서 전광판 미비와 인조 잔디 타석 문제, 낮은 펜스 및 안전망으로 인한 파울 타구 유출 위험성을 모두 지적하며 제주도 측에 개선을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제주도 측은 실사 당시 "지금까지 이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파울 타구가 밖으로 넘어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해, 협회는 대체 구장이 없는 여건상 결국 해당 구장 사용을 승인했다.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타구와 프로 지명을 앞둔 엘리트 고교 선수들의 타구 비거리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주도의 탁상행정이 예고된 위험을 부른 셈이다.


협회 관계자는 전광판 문제에 대해서도 "실사 때 지속해서 요구해 그나마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저 정도 전광판이라도 겨우 설치된 것이라 감사해야 할 판"이라며 씁쓸해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역대급 유료 관중을 동원하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고, 그 흥행의 화수분인 고교야구 역시 세계 무대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최고 권위와 107년 역사를 지닌 전국체전 야구장은 선수와 시민의 안전은 물론 기본적인 관전·스카우트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현장을 찾은 또 다른 야구인은 "이런 열악한 시설과 부실한 안전 대책 속에서 경기를 강행하는 것은 대회를 안 치르느니만 못한 졸속 행정"이라며 "선수 부상이나 행인 타구 사고 등 인명 피해가 커진 뒤에야 책임을 떠넘길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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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주도 측은 이 같은 경기장 시설 미비와 안전 대책 부재 지적에 대해 이날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기로 했으나, 끝내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호남취재본부 박창원 기자 capta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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