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NPU 높은 전성비로 GPU 대안 부상
리벨리온·퓨리오사·딥엑스 본격 실적 창출 국면
경량화·후공정 협력사 지원사격도 상용화 기여
지난 7일 방한한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의 일정표에서 가장 시선을 끈 대목은 국내 주요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경영진과의 비공개 회동이었다. 딥엑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내로라하는 팹리스들이 이름을 올렸다. 엔비디아의 독주를 저지하려는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수장이 한국 팹리스들에 손을 내민 이유는 명확했다. 자사의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한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결합하는 '이기종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해 엔비디아의 아성을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한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18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정부 과제 지원금이나 공공 실증 사업의 '테스트 칩' 수준에 머물던 국산 AI 반도체가 본격적인 실적 창출 국면에 들어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연구 단계를 벗어나 실제 상용 서비스 트래픽을 처리하고, 해외 데이터센터에 수백억 원대 양산 칩을 납품하며 사업의 수익성이 숫자로 확인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리사 수 AMD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7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AI 반도체 기업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국내 AI 기업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6.10.7. 강진형 기자
이처럼 국산 NPU가 시장성을 입증하고 글로벌 빅테크들의 러브콜을 받게 된 배경에는 AI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초기 시장에서는 막대한 데이터를 밀어 넣는 '학습'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제 사용자의 요청에 답을 내놓는 '추론'이 데이터센터 전력과 서버의 4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핵심 워크로드로 부상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범용 그래픽 처리용 회로까지 모두 품고 있는 GPU는 추론 작업을 반복할 때 전력 소모와 하드웨어 운영비(TCO)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반면 AI 연산(행렬 곱셈)에만 특화되도록 설계된 NPU나 주문형 반도체(ASIC)는 GPU 대비 전력 효율이 압도적이며, 칩 도입 단가와 유지 비용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NPU를 비롯한 ASIC 기반 서버 출하량 증가율은 44.6%로 범용 GPU 서버 증가율(16.1%)을 3배 가까이 웃돌 전망이다.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시장 내에서 GPU를 제외한 특화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해 18%에서 2030년 41%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빅테크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들이 국산 NPU에 지갑을 열기 시작한 구조적 이유다.
국산 AI 반도체 기업들의 성적표는 숫자로 확인되고 있다. 먼저 리벨리온은 자사 1세대 NPU 칩 '아톰'을 에이닷 등 SK텔레콤의 핵심 서비스에 적용함으로써 하루 평균 1400만 건, 연산 토큰 기준 40억개의 실제 트래픽을 처리하고 있다. 빅테크의 대규모 상용 운용에 견줄만한 실전 가동 데이터를 확보한 셈이다. 사피온코리아와의 합병 후에는 삼성전자 4나노(㎚·1㎚=10억분의 1m) 공정과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44GB를 결합한 2세대 제품 '리벨100'을 준비 중이며,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공급 및 일본 도쿄 데이터센터에 100개 이상의 랙 공급 일정을 확정 지었다.
퓨리오사AI 역시 해외 데이터센터에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수출 잭폿을 터뜨렸다. TSMC 5나노 공정과 SK하이닉스의 HBM3 48GB를 탑재한 2세대 칩 '레니게이드(RNGD)'는 초도 물량 4000장 양산을 완료하고 본격 출하에 들어갔다. 고성능 모델을 구동하면서도 소비전력이 180W에 불과하다. 별도의 수랭식 설비 없이 일반 공랭식 데이터센터에 곧바로 꽂아 쓸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 무기가 됐다. 스웨덴 스톡홀름 AI 데이터센터에 RNGD 8800장 이상을 단일 납품하는 1230억원 상당의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시장의 교두보도 마련했다.
딥엑스는 온디바이스·피지컬 AI 시장에서 수율과 수주를 동시에 잡았다. 1~5W 안팎의 초저전력으로 로봇, 스마트팩토리, 지능형 CCTV를 구동하는 'DX-M1'은 양산 돌입 후 수율을 9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미국·중국·유럽 등 전 세계 9개국에서 77건, 약 1300만달러(약 175억원) 규모의 구매 주문(PO)을 쓸어 담았다. 대만 에이온과 3년간 양산 부품 공급 협약을 맺었으며, 삼성전자 2나노 공정을 적용해 소형 로봇 환경에서 생성형 모델을 구동하는 차기작 'DX-M2'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처럼 국산 NPU가 상용화 문턱을 넘는 데에는 소프트웨어 최적화와 후공정을 뒷받침한 협력사들의 지원 사격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례로 AI 모델 최적화 전문 업체인 노타는 거대 AI 모델의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크기와 연산량을 줄이는 경량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퓨리오사AI의 데이터센터 칩에 이 최적화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공급하며 국산 칩의 호환성을 끌어올렸다.
반도체 테스트 전문업체 아이텍의 경우 딥엑스의 시제품 개발 단계부터 협력해 실제 사용 환경에서 반도체의 동작을 정밀 검증하는 시스템 레벨 테스트(SLT)를 전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AI 팹리스들의 약점으로 지목됐던 소프트웨어 지원과 글로벌 레퍼런스 부재가 올해 통신사의 실제 트래픽 처리와 수출 계약으로 해소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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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윤 지엘리서치 연구원은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서비스 검증과 공급 계약이 본격적인 도입·증설로 이어지는지, 딥엑스는 설계 채택과 초기 주문이 고객 제품의 양산·반복 발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주문 규모와 매출의 지속성이 함께 확대되는지가 국산 NPU 업체들의 실적 성장 단계 진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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