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이 형' 은퇴…"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정민 통산 11승 '국내 투어' 작별
은퇴식에서 눈물 아닌 환한 미소
"100점 만점에 1000점을 주고 싶다"
"필드 위에서 보여준 당신의 뜨거운 열정, 그 설렘과 감동을 잊지 않겠습니다."
눈물 대신 웃음이 가득했다. 1992년 1월생, 34세 베테랑 이정민이 정든 필드와 작별을 고했다. 그는 1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아이스버그골프·서울신문 오픈(총상금 15억원)이 열리는 경기 이천시 H1클럽(파72)에서 은퇴식을 열고 17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정민은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선수 생활에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아웃오브바운즈(OB)를 냈을 때조차 후회하지 않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 없이 골프채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식이 열린 대회장에는 이정민의 앞날을 응원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문도엽 등 친구들은 그의 마지막 여정을 응원하기 위해 커피차를 준비했다. 후배 한진선은 케이크를 선물했고, 조윤지와 배희경, 박민지, 박지영, 이세희, 최예림 등 동료 선수들도 자리를 함께하며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김순희 KLPGA 수석부회장은 꽃목걸이를 건네며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정민은 KLPGA 투어를 대표하는 간판스타 중 한 명이다. 2010년 정규 투어에 데뷔한 뒤 17시즌 동안 꾸준히 활약하며 메이저 대회 1승을 포함해 통산 11승을 거뒀다. 데뷔 첫해부터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존재감을 알렸다. 이후 2014년 2승, 2015년 3승을 수확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KLPGA 투어에서 벌어들인 통산 상금만 약 46억원에 달한다.
시련도 있었다. 2016년부터 5년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다시 정상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24년에는 메이저 대회인 크리스에프앤씨 제46회 KLPGA 챔피언십에서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당시 23언더파 265타를 기록하며 KLPGA 투어 72홀 최소타 타이기록까지 세웠다. 다만 올해는 17개 대회에 출전해 6차례만 컷을 통과하는 등 고전했다.
은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부상이었다. 2024년 하반기 왼쪽 손목 연골을 다친 뒤 예전의 경기력을 되찾기 어려웠다. 이정민은 "부상 이후 추운 날씨에 경기하거나 러프가 깊은 코스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내가 원하는 경기력이 나오지 않아 은퇴를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니다. 이정민은 "오랜 선수 생활 동안 다른 선수와 경쟁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늘 나 자신과 싸운다고 생각했다"며 "그만큼 후회 없이 골프를 쳤다. 나 자신에게 100점 만점에 1000점을 주고 싶다"고 웃었다.
이정민에게는 '철학자' '정민이 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털털한 걸음걸이와 꾸밈없는 성격, 골프를 대하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다. 후배들에게는 닮고 싶은 롤모델이기도 하다. 올해 투어에 데뷔한 김가희는 "대선배인 이정민 선수에게 매료돼 골프를 시작했다. 카리스마가 넘치고 아이언 샷이 정말 뛰어나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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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을 향한 조언에도 이정민 특유의 여유가 묻어났다. 그는 "공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붓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OB를 내더라도 공은 골프장 안에 있지, 어디 멀리 달아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실수 하나에 얽매이기보다 긴 호흡으로 골프를 즐기라는 당부였다.
은퇴 후 계획은 아직 백지상태다. 이정민은 "당분간 백수처럼 지내며 나 자신을 비우고 싶다. 비우다 보면 언젠가 다시 채워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장 골프와 관련된 일을 시작할 생각도 없다. 대신 쉬는 동안 좋아하는 스키를 마음껏 즐길 계획이다. 이정민은 지난겨울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티칭 레벨 1 자격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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