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의 딥테크]가전쇼 넘어 미래 산업 설계자로…60살 CES의 진화
파브리지오 CTA 회장, "자체 시장조사·산업 동향 분석으로 미래 기술 발굴"
신기술 전시 공간 확대해 기업·투자자 연결, 산업 성장 촉진
양자·우주 데이터센터·BCI까지 차세대 산업 의제 확장
우버 첫 참가·AMD 체험 공간 신설…로봇·헬스 전시 강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가 신제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넘어 미래 산업을 찾아내고 키우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내년 개최 60주년을 맞는 CES 2027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넘어 양자기술, 우주산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까지 전시 영역을 넓힌다.
수많은 전시회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동안 CES가 '가전'이라는 한계를 넘어 세계적인 첨단기술 전시회로 자리 잡은 이유가 단지 미국에서 열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킨제이 파브리치오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CES의 미래 기술 발굴 전략을 묻는 아시아경제의 질문에 "기술 산업에서 작은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를 주목하고 키워나간다"고 답했다. 그는 "AI도 수년 전부터 이런 흐름을 관찰했으며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CES가 미래 기술을 발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시 현장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기술 흐름을 파악한다. 각국 정부의 기술 정책과 투자 전략도 분석한다.
파브리치오 회장은 "각국이 양자기술에 투자하는 움직임을 보면서 관련 기업들이 CES에서 기술을 선보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양자기술은 지난해부터 CES의 주요 화두로 부상했다. 2025년 CES 기간 열린 엔비디아의 투자자 행사에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실용적인 양자컴퓨터의 등장까지 20년가량 걸릴 수 있다고 발언하자 양자컴퓨팅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미래 기술에 대한 전망이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CTA는 미래 동향을 분석하기 위해 자체 연구 역량도 활용한다. 별도의 시장조사 전문 조직을 운영하며 기술산업의 변화와 소비자 수요를 분석한다. CES에서 축적한 데이터뿐 아니라 참관객과 언론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 결과도 활용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산업계의 관심과 시장 수요를 살피고 향후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로 CTA는 이날 지난 7월 한국 소비자 4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AI 활용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의 70%가 업무에 AI를 이용하고 있으며 47%는 매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활용해 절약하는 업무 시간은 주당 평균 8.2시간이었다.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응답자 전원이 AI가 유용하다고 평가한 국가는 조사 대상 중 한국과 미국뿐이었다. CTA가 독자적인 조사와 통계를 통해 기술 확산의 속도와 산업적 영향을 분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직 초기 단계인 미래 기술이 CES의 새로운 의제로 부상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기반 덕분이다. 멜리사 해리슨 CTA 부사장은 "CES 2027에서는 사비(Sabi)라는 스타트업이 모자 형태의 장치를 활용한 BCI 기술을 소개할 예정"이라며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CTA는 우주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방안도 내년 CES에서 논의될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상용화하기 어려운 기술까지 산업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우주기술 역시 CES가 초기 기술 흐름을 포착해 전시 영역을 확장해 온 분야 중 하나다.
CTA는 CES 2027의 기술 흐름을 반도체·데이터·에너지 등 혁신의 '기반', 피지컬 AI·모빌리티·헬스케어 등 산업의 '전환', 양자·우주·BCI 등 미래의 '탐색'으로 구분했다.
이 같은 전략은 CES 2027의 전시장 재편에서도 확인된다. CES 2026에서 처음 선보인 AI·양자기술 특화 공간 'CES 파운드리'는 내년에는 하루 늘어난 사흘간 운영된다. 이번에는 '에이전틱 AI' 기업을 위한 공간도 추가된다. 베네시안 전시장에는 의료·건강기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헬스 허브'가 신설된다. CES가 오랫동안 주목해 온 헬스케어 분야도 한층 강화되는 셈이다.
로봇과 첨단제조업의 비중도 커진다.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 사우스홀 3관은 첨단제조·로봇·자동화 기술의 새로운 거점이 된다.
해리슨 부사장은 "노스홀이 지능형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면 사우스홀은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제조 AX(M.AX) 얼라이언스도 사우스홀에 휴머노이드 전시관을 마련해 관련 기술을 소개할 예정이다.
개최 60주년을 맞는 CES에 참가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CES 2027에는 차량 호출 기업 우버가 처음으로 전시장에 부스를 마련하고 자동차 기업 포드는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복귀한다. AI 반도체 기업 AMD는 중앙광장에 처음으로 체험 공간을 조성한다. 음악 서비스 기업으로 알려진 냅스터도 새로운 사업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 미디어텍과 스마트글라스 기업 스냅도 전시에 나선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케이던스는 기존 회의실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웨스트홀에 전시 공간을 마련한다. 음성 AI 기업 일레븐랩스는 CES 파운드리에서 노스홀로 이동한다. 신생 기술기업들이 주요 전시장으로 진출하면서 CES의 산업 지형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한국 기업들의 참가도 이어진다. 해리슨 부사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기아, 현대모비스, 한국콜마, 마음AI, 모빌린트, 비햅틱스, 세라젬, 위로보틱스 등을 CES 2027 참가 예정 기업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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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치오 회장은 "미래를 미리 들여다볼 수정구슬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지금 이런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CES가 기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넘어 미래 산업의 방향까지 제시하는 무대로 진화하고 있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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